[세계 석학에 듣는다]

국가부도의 해

칼멘 라인하트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 행정대학원 교수

국채와 관련해서는 '디폴트(채무불이행)'라는 용어가 종종 오해를 사곤 한다. 디폴트라 해도 채무 전부를 영구히 갚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실 제정러시아 시대 국채 일부도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일부이기는 하지만) 상환됐다. 디폴트는 대개 채무 구조조정 논의를 촉발하곤 한다. 만기 연장, 이자 지급 축소, 상환 유예 또는 (이른바 '헤어컷'이라는) 액면 감액 등이 그것이다.

과거 경험에 비춰보면 2016년에는 이 같은 논의가 많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세계 경제의 다른 많은 특징들처럼 채무 누적과 디폴트는 주기적으로 일어난다. 1800년 이후 세계 경제는 이 같은 주기를 몇 차례 견뎌냈고, 연도별로 채무조정을 겪는 독립국가들의 비율은 0~50%를 오락가락했다. 반면 10년, 또는 20년 동안 디폴트가 잠잠한 경우는 흔한 게 아니었다. 각 휴지기 뒤에는 반드시 새로운 디폴트 파도가 뒤따랐다.

가장 최근의 디폴트 주기는 1980~1990년대 신흥시장 채무위기이다. 대부분 국가들이 1990년대 중반까지는 대외부채 문제를 해결했지만 저소득국가 그룹 가운데 상당수는 국채를 만성적으로 체납하고 있다.

명백한 디폴트나 채무 구조조정처럼 이 같은 채무지연은 종종 깔개 밑에 한꺼번에 묻혀지곤 한다. 저소득국가가 상대적으로 소액을 빚지는 경향과 관계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비우호적인 글로벌 여건에 맞닥뜨려 부채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되는 경우 새로운 연쇄 위기가 촉발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사실 세계 경제여건은-상품 가격이 요동치고, 미국이나 중국 같은 주요 경제국들의 금리가 변동하는 것 같은- 국가채무위기에서 주된 역할을 한다. 최근 빈센트 라인하트, 크리스토프 트레베시와 나의 공동연구에서 나타난 것처럼 국제 자본흐름 주기의 고점과 저점은 자본 유입 횡재가 끝나갈 즈음 디폴트가 확산되면서 특히 위험한 시기가 된다.

2016년이 시작되면서 심각한 부채·디폴트 태풍이 일 조짐이 수평선 끝에 어른거리고 있다. 우리는 이미 그 첫번째 흰색 파도를 볼 수 있다. 일부 국가의 경우 주된 문제는 내부 채무 역학에서 비롯된다. 우크라이나 상황은 특이한 동력을 감안할 때 분명 우려할 만하지만 그렇다고 그 과도한 결론을 유도하는 것은 최선이 아닐 것이다.

대조적으로 그리스의 상황은 모든 게 너무 익숙하다. 정부가 지속불가능한 수준까지 계속해서 빚을 늘리고 있다. 이 같은 과도함의 증거가 압도적인 수준까지 되면 신규 신용유입은 멈추고, 기존 채무 상환도 불가능해진다. 지난해 7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 채권단과 격한 협상 끝에 그리스는 IMF 채무를 디폴트했다. 선진국 가운데 그리스가 지금까지 유일무이하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실제 전개는 새로운 합의를 향한 완전한 디폴트가 아니었다. 그리스의 유럽 협상 파트너들은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의 그리스 정부가 험난한 구조조정과 급격한 재정감축을 이행한다는 약속을 받고 결국 추가 금융지원 제공에 동의했다. 불행히도 이런 대응은 위기를 지연시켰을 뿐 해결에는 별다른 효과가 없어 보인다.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 또 다른 나라는 미국령 푸에르토리코이다. 730억달러 국가채무에 대해 포괄적인 조정이 시급하다.

최대 위험 가운데 일부는 신흥시장에 있다. 이들은 세계 경제환경 급변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중국은 인프라 붐 기간에 막대한 규모의 상품을 수입했고, 가격을 끌어올렸으며 그 결과 브라질 같은 거대 신흥시장 국가들을 포함해 세계 상품 수출국들의 성장을 촉진했다.

그러나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금리인상 전환이 중국 성장 둔화, 유가·상품가격 붕괴와 맞물려 자본유입이 중단되는 등 상황은 급변하고 있다. 최근 상당수 신흥시장 통화가 급락해 달러표시 대외채무 상환비용을 높이고 있다. 수출과 재정수입은 줄고 경상수지·재정수지 적자는 확대되고 있다. 성장과 투자가 거의 모든 곳에서 둔화되고 있다.


역사적 관점에서 신흥시장은 대규모 위기를 향해 치닫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전보다 탄탄한 내성을 보여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를 과신해서는 안된다.

정리=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