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fn 이사람]우리 술 맥을 잇는 조미담 대표

이승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2.16 14:47

수정 2016.02.16 17:08

자신이 직접 빚은 술을 들고 있는 조미담 대표
자신이 직접 빚은 술을 들고 있는 조미담 대표

"매일 술단지를 어루만지면서 이야기를 해요. '잘 커줘 고맙다. 고맙다' 합니다. 그럼 애들이 정말 잘 커줘요. 술이 제 말을 알아 듣냐구요? 신기하게도 알아 듣는 답니다"

미담양조장 조미담 대표(사진)의 술이야기는 마치 동화 속 세상 같았다. 국문학사에 등장하는 '국(麴: 누룩 국)선생전'의 21세기 버전을 보는 듯 했다.

'꼬드밥'을 짓는 것부터 누룩을 섞어 치대는 과정, 술독에 넣고 발효시키는 과정, 술이 익은 뒤 용수를 대고 걸러내는 과정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만화영화가 눈 앞에서 펼쳐지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강원 홍천 산자락에 자리잡은 그녀의 양조장은 마치 외할머니 집 같기도 했다.
옛날 제사가 끊이지 않았던 집에서는 집안 한쪽에서 늘 술이 익어가는 단지가 있었는데 주변에 가면 맡을 수 있던 향긋한 냄새가 가득 배어 있었다.

어릴 적 제사음식을 준비하던 외할머니가 막걸리를 빚는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고 그 때 할머니에게 들었던 뜻모를 단어들이 머나먼 추억의 저편에서 책갈피를 죽 찢고 튀어나오는 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옛날 할머니의 술독처럼 조 대표 술도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의 손끝을 떠나지 않는다. 요즘은 '손으로 한다'는 양조장들도 누룩과 밥을 섞는 것은 기계로 하지만 조 대표는 그 마저도 손으로 한다.

술이 익은 뒤 청주와 막걸리, 술찌게미를 분리하는 과정도 옛날 방식 그대로 '용수'를 대로 거른다. 용수는 대나무로 만든 채를 말하는데, 꼭 대포 포탄같이 생겼다.

"힘들죠. 정말 힘들죠. 힘든 만큼 애기들이 보답을 해줍니다"

술 빚는 모든 과정을 손으로 한다면 여간 힘들지 않겠다고 말하자 조 대표는 자식을 키우는 것과 비슷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실제 그녀는 이야기를 하는 내내 숙성 중인 술들을 '애기들' 혹은 '애들'이라고 불렀다.

이런 정성 때문인 듯 조 대표가 빚어낸 술은 향긋하면서도 정겨웠다.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꽤 기분좋게 마실 수 있을 듯 했다.

"일본술이 깔끔하긴 하지만 정제된 효모를 쓰기 때문이죠. 그러면 항상 똑같은 맛을 내기 때문에 대량생산에는 유리해죠. 하지만 왠지 쌀쌀맞고 사무적인 느낌이지 않나요?"

이에 비해 누룩을 섞어 만든 우리 술은 재료의 원래 맛과 사람의 정성이 숙성되면서 우러나는 여러가지 향기가 어우러진다는 것이 조 대표의 설명이다. 대량생산은 어렵지만 술이 원래 가져야할 '덕목'을 고루 갖추고 있는 진짜 술이라는 것이다.

조 대표는 원래 서울시내 대학가 근처에서 막걸리와 함께 전을 부쳐 팔았다. 우연한 기회에 사카린이 가득 든 공장 막걸리 말고 진짜 막걸리를 만들어 보고 싶어졌다. 그길로 전국의 전통주 장인들을 찾아나선 조 대표는 수년 동안 장사 대신 술빚는 법을 배웠다.

"우리 술이 지금처럼 명맥이 끊어진 건 일제 강점기부터예요. 그 전에는 집집마다 술담그는 비법이 다 있었거든. 그걸 일제가 다 없애버린 거야. 밀주단속 한다면서...그게 해방이후까지 계속 됐고요"

조 대표는 작은 주막을 여는 것이 꿈이다.
직접 빚은 전통주와 함께 우리 술에 얽힌 옛 이야기를 함께 나눌 공간이다. 중앙선과 경춘선 등 노선이 옮겨 가면서 생긴 폐철로 부지 등을 물색 중이다.
홍천에 오기 전 한때 서울 방배동에서도 비슷한 실험을 한 적이 있다.

"큰 돈이 필요한 건 아닌데 생각보다 쉽지 않네요. 하지만 꼭 해보고 싶어요"
relee@fnnews.com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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