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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3월 1일의 반성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3.02 16:57

수정 2016.03.02 16:57

[fn논단] 3월 1일의 반성

선우휘의 소설 '불꽃'은 서울에서 북으로 백여리 떨어진 P고을의 교회에서 30여명의 교인들이 태극기를 나눠들고 3·1만세운동에 참여하다 죽어가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선우휘는 이 작품으로 제2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수상식장에 대령 계급장을 달고 참석해 모든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이 작품에서 대한민국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그려냈다. 3·1운동부터 해방기까지의 역사를 고현이라는 인물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그려냈다는 것이다. 서두에서 3·1운동의 현장을 보여주었다는 것 자체가 선우휘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3·1운동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잘 말해준다.


선우휘는 자타가 공인하는 반공주의자다. 1945년 광복 이후 월남하고 줄곧 북한 정권의 전체주의에 대해 공격해 왔으니 그런 평가가 하등 이상할 것도 없다. 그렇지만 그가 특정 사회주의에 대해서만큼은 호평했던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물론 그가 말한 사회주의란 영국의 페이비언사회주의를 말하는 것으로서 거의 자유민주주의에 가까운 이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가. 선우휘 초기 대표 소설인 이 '불꽃'을 읽다 보면 최소한 이 시기에 국한해서만 본다면 의외로 그가 꽉 막힌 반공주의자가 아니라 적극적이고 합리적인 자유민주주의자였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5·16 당시 선우휘의 돌출 행동이나 1964년 정부의 언론법 제정에 반대해 반공법 및 임시특례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던 일, 김대중 납치사건에 대한 비판적 사설 등 선우휘와 관련한 숱한 일화들은 그의 자유주의적 합리성과 공정성을 보여주는 적절한 사례라 할 것이다 .

그런 사실은 이 '불꽃'이라는 작품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공산주의자가 되어 돌아온 친구 연호가 주관하는 그 마녀사냥식 인민재판에 대해 "살인이다" 하며 흥분해서 나서게 된다거나 일본 유학 시 일본 교수의 "자아를 멸하여 이 대목적에 헌납해야 한다"는 대동아공영권 찬미론에 대해 그 집단적 전체주의를 공개적으로 비판한다든지 하는 것은 고현이 얼마나 집단의식을 혐오하고 개인의 존엄성을 중시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광복 후 몸담은 학교에서 교장이 자신의 치부를 좌익 사상을 가진 교사들에게 전가하려 하자 남의 일에 끼어들지 말자고 그렇게도 다짐했으면서도 교장에 대해 그가 아무리 같은 이북 출신이라 할지라도 단호하게 그 부당성을 성토하는 모습은 선우휘의 자유주의적 합리성과 공정성을 잘 보여주는 단면이라 할 것이다.

요즘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관련한 일련의 사태들이 급박하게 전개되고 있다. 유엔에서도 유례없이 강도 높게 제재하려 하고 있고, 우리 정부도 개성공단에서 철수함으로써 북한의 공격성에 대한 우리의 의지를 확고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는 테러방지법 문제로 릴레이 필리버스터라는 사상 초유의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한편 선거구 획정이나 공천권 문제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이 뜨겁기도 하다.
불꽃처럼 뜨겁게 살려 했던 고현이 그럼에도 자기 안에 공정성이나 합리성이라는 '차가운' 이성을 잃지 않으려 했던 것처럼 우리 정치권도 아무리 자당의 정치적 목표와 이해가 걸렸다 할지라도 스스로 자기 안의 합리성과 공정성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자기 반성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김진기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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