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한국을 사랑했던 낸시 레이건 심장 악화로 94세 타계

김규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3.07 18:05

수정 2016.03.07 18:05

1983년 방한 후 귀국길에 선천성 심장병 아이 동행 미국서 수술 받게 해 주목
6일(현지시간) 타계한 낸시 레이건 여사가 지난 1983년 12월 미국 뉴욕에서 선천성 심장병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이길우군(왼쪽·미국명 브렛 핼버슨)과 안지숙양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며 같이 기뻐하고 있다. 사진제공=브렛 핼버슨
6일(현지시간) 타계한 낸시 레이건 여사가 지난 1983년 12월 미국 뉴욕에서 선천성 심장병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이길우군(왼쪽·미국명 브렛 핼버슨)과 안지숙양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며 같이 기뻐하고 있다. 사진제공=브렛 핼버슨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인 낸시 레이건 여사가 6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인근 벨에어의 자택에서 심장 기능 악화로 9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AP통신 등 주요 외신들은 퍼스트레이디로서 보낸 8년을 포함한 낸시 레이건의 생애를 조명했다.

낸시 레이건은 남편 레이건 전 대통령처럼 영화배우 출신이다. 남편이 할리우드 배우 시절 만나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미국 대통령을 거치는 동안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보호자 역할을 한 퍼스트레이디로 주목받았다.


두 사람은 레이건 전 대통령이 알츠하이머병으로 먼저 타계하기전까지 52년동안 금술 좋은 부부로 유명했다.

낸시 여사는 세상을 먼저 떠난 남편이 너무 보고 싶다며 지난 2009년에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에게 천국에서 재회하도록 약속해달라는 부탁까지 했다고 한 잡지와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낸시 레이건은 백악관 입성 초기는 순탄치 못했다. 일류 디자이너가 제작한 의상을 입고 받은 기부금으로 백악관의 인테리어와 식기를 고급스럽게 교체하면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또 백악관의 정책 결정에도 자주 개입해 백악관 비서실장이던 도널드 리건을 경질시키도록 압력을 넣었다는 비판도 받았다.

하지만 리모델링으로 백악관의 품격이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자신은 "남편을 사랑하는 여자일뿐"이라며 남편 '로니'의 대통령 위상을 높이는 내조가 퍼스트레이디로써 유일한 임무라고 늘 강조했다.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레이건 대통령 부부는 지난 1983년 방한을 마치고 귀국할 때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 두명이 미국에서 수술을 받도록 동행시켜 주목 받기도 했다.

이들의 수술은 한국 내에서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들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수술로 새 생명을 얻은 브렛 핼버슨(한국명 이길우)은 당시 미국행을 주선한 국제자선기구 기프트오브라이프인터내셔널(Gift of Life International)의 글로벌 대사로도 현재 활동하고 있다.

jjyoon@fnnews.com 윤재준 국제뉴스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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