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사설

[차장칼럼] 대기업 경영 세대교체

최진숙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3.09 17:17

수정 2016.03.09 22:13

[차장칼럼] 대기업 경영 세대교체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정신감정은 결국 서울대병원에서 하게 됐다. 재판부는 9일, 늦어도 4월 말까지 입원해 2주가량 검사를 받으라고 명령했다. 그가 정상적 판단능력을 갖춘 사람인지 여부는 이제 그 병원에서 가려지게 된다. 일제강점기 단돈 85엔을 들고 일본땅에 건너가 '조센징 장사꾼'이라는 멸시에도 악착같이 부를 일궜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고국에서 다시 기업을 일으켰던 재계 거인의 말년이 스산하기 그지없다. 신 회장은 이 보기 드문 스캔들을 뒤로한 채 이달부터 롯데 계열 7개사 등기이사직을 차례로 내주면서 롯데에서 퇴장하게 된다.

지금 한국 대기업은 숨가쁜 세대교체 시기에 접어들었다.
120년 기업 두산그룹의 총수도 최근 4세로 넘어갔다. 박두병 창업회장 이후 두산 경영권은 박 회장 자식의 형제 간, 다시 대가 바뀐 사촌 형제간으로 이어지는 방식을 따르고 있다. 박용만 회장에게서 대권을 이어받은 박정원 ㈜두산 지주부문 회장은 박두병 회장의 장손이다.

3세, 4세가 경영 전면에 등장하면서 현장에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사실 전쟁 후 폐허 속에서 기업과 나라 경제를 챙겼던 1세대 창업주를 향한 시선은 비교적 너그러웠다. 온갖 시련과 역경에도 미래를 향해 전진했던 1세대의 삶은 그 자체로 교훈이다. 하지만 이들의 3세, 4세들이 선대의 기업가정신까지 이어받은 것인지에 대해선 다들 자신없어한다. 창업자인 아버지의 고생을 옆에서 지켜봤던 2세대와도 다른 심성의 소유자라는 인식마저 있다.

유럽 장수기업들은 그 나름의 전통과 규율로 경영권 승계가 이뤄진다. 이미 5세 경영이 본격화된 스웨덴 발렌베리의 경우 총수 추대 과정이 엄격하기로 소문이 나 있다. 일찌감치 후보군을 정해 자질과 능력, 인성 교육을 한 뒤 2차, 3차 후보자 압축 과정을 거쳐 최후 1인을 뽑는다. 험난한 관문을 통과한 총수와 그 일가는 시키지 않아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게 돼 있다.

물론 한국 재벌의 모델을 발렌베리에서 찾는 건 무리가 있다. 그 방식은 우리에게 맞지도 않을 뿐더러,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양국 기업문화 차이 이상으로, 두 나라 정치.사회 시스템은 뼛속까지 다르다. 하지만 발렌베리식은 아닐지언정, 우리식 적합한 승계 프로그램이 이젠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가신그룹에 막혀 그릇된 판단을 하거나, 검증 없이 이뤄진 가문의 폐쇄적 결정으로 한국 굴지의 기업이 잘못된 길로 빠지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일 것이다.

기업 현장은 이제 근본 패러다임이 바뀌는 상황 속에 있다.
산업화시대 한국의 성장을 이끌었던 업종은 우리가 도전했던 똑같은 방식의 후발주자들 추격에 역풍을 맞은 지 오래다. 새로운 영역 발굴, 기술혁신, 이런 것들이 기업의 중차대한 과제가 됐다.
이 급변기에 살아남을 3세, 4세는 누가 될까. 실력, 품성, 비전을 고루 갖춘 '금수저'여야 결국 희망이 있다.

jins@fnnews.com 최진숙 산업부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