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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국산맥주의 위기

이재훈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3.28 17:01

수정 2016.03.28 17:01

2012년 말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맥주는 북한의 대동강 맥주보다 맛없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어 국내 맥주업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한국통인 다니엘 튜더 기자는 "한국 맥주가 맛없는 이유는 규제와 과점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부드러운 라거 맥주만 내놓는 한국 맥주업체들이 다양한 맛을 찾는 소비자의 취향을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충격받은 애주가들은 이때부터 수입 맥주에 눈을 돌리게 된다. 마침 2011년 발효된 한.유럽(EU)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전통 있는 유럽 맥주들이 속속 한국시장 문을 노크할 때였다.

소주.위스키 시장이 위축되는 상황에서도 맥주시장은 소폭이나마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소주와 맥주를 타서 먹는 '소맥'이 보편화되고 야식 메뉴로 '치맥(치킨+맥주)'이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산 맥주는 제자리걸음이고 성장의 과실은 온전히 수입 맥주의 몫일 뿐이다. 지난해 국산 맥주 시장규모는 2조1650억원으로 전년(2조1400억원)과 별 차이가 없다. 반면 지난해 수입 맥주시장은 약 5000억원으로 전년(3600억원)보다 39%나 커졌다.

특히 가정용 시장은 수입 맥주가 급속히 잠식했다. 올 1~2월 중 대형마트에서 수입 맥주 점유율은 40% 내외며 편의점 점유율은 41~45%에 달한다. 마트들은 수백가지 수입 맥주를 진열해놓고 5~6개 묶음을 1만원대에 할인판매하고 있다. 20, 30대 청년층에게는 맥주를 직접 골라 먹는 '맥주창고' '맥주바켓' 등 셀프 맥줏집이 인기다. 셀프 맥줏집은 수입 맥주를 중심으로 판매한다. 수입 맥주의 강점은 역시 다양성이다.

국산 맥주시장은 오랜 기간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가 지배해왔고, 2014년에야 롯데가 뛰어들어 3강 체제를 형성했을 뿐이다. 10만L 이상 저장시설을 갖춰야 하는 등 시설요건이 까다로워 소규모 사업자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소수의 맥주업체들은 '소맥' 트렌드에 안주한 나머지 품질 향상과 신제품 개발에 소홀했던 게 사실이다.

보다 못한 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 맥주시장에 대한 규제를 손보기로 했다. 진입장벽, 소규모 맥주의 소매점 판매제한, 출고가격 이하 할인판매 금지 등의 규제가 국산 맥주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공정위는 곧 맥주시장 분석에 관한 연구용역을 발주하고 상반기 중 규제개혁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규제와 진입장벽은 산업을 죽이는 지름길이다.
애주가들은 다양하고 개성 있는 맥주맛을 즐기고 싶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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