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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한민국 OOO입니다(30)] "알파고요? 게임을 마약 취급하는 정부 너무해요"

허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3.28 18:40

수정 2016.03.28 18:40

소프트웨어 개발자
기업이 채용하는 개발자 정교함보다 구색맞추기식, 고급인력 아닌 초보자들
알파고 만든 허사비스도 게임 개발했던 사람인데 정부 '게임은 나쁜 것' 취급
[나는 대한민국 OOO입니다(30)]

저는 대한민국 '개발자'입니다. 그동안 개발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 수두룩했지요. 그런데 최근 알파고 덕분에 개발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이 있었던 기간에는 주위에서 하도 이것저것 물어보는 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당시 제일 지겹게 들은 질문은 "우리나라는 왜 알파고 같은 걸 만드는 개발자가 없느냐"라는 것입니다. 뭐라고 답해줘야 할지 한숨부터 나오더라고요. "아직은 힘들다"고 답하면 다들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우리나라가 정보기술(IT) 강국 아니냐"는 반문이 돌아오기 일쑤지요.

하지만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나라가 하드웨어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앞서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미국 등 기존 강국을 따라가기에 역부족인 것이 현실이지요. 독자적 운영체제(OS)를 만드는 것도 힘든 상황에서 알파고와 같은 고도의 기술을 개발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경력자 전문가 필요없다, 10년 미만 저임금 개발자만 찾는 게 현실

개발자를 대하는 우리나라의 시각부터 바꿔야 합니다. 우리 소프트웨어 산업은 오랜 경력의 고임금 개발자보다 경력 10년 미만의 저임금인력 중심으로 구성됩니다.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하도급, 외주 위주의 불안정한 산업구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전문성을 유지하며 고급 개발자로 성장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개발자끼리 모이면 야근에 대한 어려움을 서로 하소연하는 게 일입니다. 현재의 개발방식은 야근 등을 통해 엄청난 시간을 투입해 결과를 만들어내는 방식입니다. 고급인력을 우대하기보다는 되도록 단가가 싼 사람을 많이 모아서 야근을 시켜 결과물만 만들어내기를 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흔히 개발자라고 하면 엄청난 지식을 가지고 복잡한 프로그래밍을 설계하는 사람들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업계에서 하는 대부분의 개발 일들은 '노가다를 한다'라는 말로 표현될 만한 일들입니다. 국내에는 아직 고급기술 수요도 많이 없습니다.

현재 기업이 채용하는 개발자들은 대부분 고급인력이 아닌 2개월의 교육을 받고 실무로 바로 투입된 '초짜'들입니다. 누구라도 각종 교육기관 등을 통해 2개월의 교육을 받으면 초보 개발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나마 업무를 제대로 알려주기라도 한다면 다행이죠. 짧은 교육을 통해 배운 지식을 짜내 주말도 반납하고 맡겨진 업무를 해내야만 합니다. 결국 기존에 사용했던 소스들을 '복붙(복사하고 붙이기)'해서 후다닥 만들어내게 됩니다. 악순환은 반복됩니다. 기업들이 정보기술(IT)시스템을 정교하게 구축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최대한 싸게 구색을 갖춰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는 식이죠.

■개발자의 피와 땀이 담긴 콘텐츠(게임)가 마약이라니

개발자들의 노력이 투영된 콘텐츠를 '찬밥' 취급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잠시 제 친구 얘기를 해볼까요. 제 친구는 온라인게임 개발자입니다. 알파고의 아버지라는 데미스 허사비스 최고경영자(CEO)도 게임을 개발했던 사람이란 것을 아시죠. 게임은 각종 첨단기술이 집약된 콘텐츠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게임 개발자들은 어떻습니까. 게임은 마약, 술, 도박과 함께 4대 중독물질 중 하나로 취급받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보건복지부가 게임을 의학적으로 '질병 유발물질'로 규정하려 하고 있다고 합니다. 게임 개발자들의 사기도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제 친구는 "게임이 마약이나 다름없다고 얘기하면 우리는 마약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얘기"라며 "밖에서 누굴 만나서 게임을 개발한다고 하면 여전히 아이들 공부 못하게 하는 나쁜 것을 개발하고 있다는 시선을 받는 것을 견딜 수가 없다"고 합니다.

벌써부터 차세대 콘텐츠 산업의 중심이 게임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정부는 가상현실(VR) 산업 육성을 외치면서 VR 게임을 가장 먼저 내세웁니다. 우리나라 콘텐츠 수출액의 절반 이상이 게임에서 발생하고 있으니 정부도 게임에 기댈 수밖에 없겠지요. 그러나 이처럼 '게임은 나쁜 것'이라는 굴레를 씌워둔다면 앞으로도 게임 산업의 경쟁력이 지금처럼 유지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건 우리 SW 개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개발자를 제대로 대우해줄 때 SW경쟁력이 높아집니다. 개발자들의 경력이 쌓이면 당연히 비용이 비싸집니다. 하지만 업계는 여전히 보다 싼 인력만 원합니다. 재하청 구조 때문입니다.

30대 후반이 되면 개발자들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개발자의 길을 계속 걷느냐, 관리자의 길을 걷느냐, 혹은 아예 다른 진로를 선택하느냐. 업계에서 개발자들의 미래는 결국엔 '치킨집 사장'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하는데 슬프게도 주변에 보면 이런 사례가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노인개발자'가 꿈, SW교육도 중요하지만 '무대'도 마련해주길

물론 한국 개발자들이 실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한국 개발자들이 일을 열심히 하고, 국내에서도 실리콘밸리와 같은 외국에 나가서 두각을 발휘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성공하는 소수의 개발자도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새로운 기술들을 공부하고, 부지런히 자신의 능력을 개발해 나가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꿈은 국내에선 보기 힘든 '노인개발자'가 되는 것입니다. 늙어서도 계속 개발자 업무를 하는 것이 힘든 환경이기 때문에 쉽지 않은 것을 알지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부는 SW를 초등학교 때부터 필수과목으로 지정하고, 전국에 SW선도학교 900개를 지정하는 등 SW 개발자 키우기에 나섰습니다. 물론 교육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지만 교육을 잘 받고 현장에 투입되는 우수한 개발자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되는 것도 중요합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노인개발자'가 많아지고, 경험이 쌓여 알파고 같은 훌륭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낼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야 합니다.

참, 그런데 이렇게 열악한 환경인 것을 알고서도 왜 개발자가 됐냐고요? 혼자 종이접기만 완성해도 그럴듯한 기분이 느껴지는데, 그 완성되는 순간의 짜릿한 기분은 말로 표현 못한답니다.
많은 개발자들이 기계적으로 일을 하지만 '왜 그러지'라는 호기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파고든다면 좋은 개발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오늘도 개발자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jjoony@fnnews.com 허준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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