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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소액외화송금 사업은 '그림의 떡'

김학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4.04 17:34

수정 2016.04.04 17:34

해외송금 시장 진출하려면 시중은행과 손잡아라? 핀테크 키우겠다던 정부, 되레 족쇄 채워
'은행과 협업' 규정 끼워넣어 핀테크업체 독자사업 불가능
송금 수수료 인하도 먼 얘기.. 정부 "법 개정해 문제 해결"
20대 국회서나 가능할 듯
스타트업 소액외화송금 사업은 '그림의 떡'

정부가 핀테크 산업을 활성화하고 스타트업(창업초기기업)들이 다양한 아이디어로 사업에 나설 수 있도록 하겠다며 소액 외화송금 시장의 문턱을 낮춰줬다. 이를 통해 일반 소비자들의 해외송금 수수료도 낮춰 서민 부담을 덜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소액 외화송금 사업도 시중은행과 협업하지 않으면 사업을 진행할 수 없도록 돼있는 법률 내용을 곧이곧대로 해석해 규정에 끼워넣어, 규제를 신설한 셈이 됐다. 결국 핀테크 스타트업으로서는 단독으로 사업을 진행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정부가 겉으로는 핀테크 활성화를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사업장벽을 만들어 허울뿐인 핀테크 육성책이라는 비난을 받게 됐다.

정부도 이 같은 비판을 알아채고 법 개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지만, 법 개정은 20대 국회가 열린 뒤에나 가능한 실정이다.
이 때문에 거액을 들여 독자 전산시스템 개발 등에 투자를 해놓고 사업 문턱 낮아지기만 기다리던 스타트업들은 당장 사업추진에 발이 묶여 회사의 생존 문제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외환관리법에 발 묶인 핀테크

4일 기획재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외국환거래 규정 개정으로 은행 외 다른 업체들도 소액 외화이체 사업에 나설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기존 은행과 업무협약을 체결해야 한다는 것이 전제조건이다. 핀테크 스타트업들이 외화송금 수납과 지급 기능을 할 수 없게 된 채 은행의 시스템을 이용해야 하는 만큼 독자적인 움직임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정부는 법을 개정해 건당 3000달러(약 345만원), 연간 2만달러(약 2300만원) 규모의 소액 외화이체 사업에 기존 은행 외에 일반 기업도 참여할 수 있게 됐고, 참여기업의 자본금 기준도 10억원 이상에서 3억원 이상으로 낮아졌다.

그러나 은행의 시스템을 이용해야 하는 규정이 끼어들면서 문제가 생겼다. 외환거래법상 '외국환업무는 금융사만 할 수 있다'는 조항을 해석해 규정에 포함시키면서, 핀테크 스타트업들은 은행의 업무 일부를 위탁하도록 하는 내용으로 규정 개정의 내용이 바뀐 것이다.

이에 따라 기재부는 연내 외환거래법 개정을 추진해 핀테크 업체들의 독자적인 사업추진을 지원할 계획이다. 그러나 연내 법 개정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한 실정이다. 결국 정부의 추진의지를 믿고 대규모 투자에 나서 인프라를 구축하고 전문인력을 채용한 스타트업들은 사업을 해보지도 못한 채 발목이 묶여 전전긍긍하고 있다.

■송금 수수료 인하효과 기대했지만…

그동안 소비자들은 달러 등 해외송금 수수료가 지나치게 비싸다는 지적을 제기해 왔다. 국내 은행에서 외화송금을 하는 경우 은행과 중개은행에 수수료를 내고 상대방이 돈을 찾을 때 해외 현지은행 수수료를 또 내야 한다.

보통 100만원을 송금할 때 수수료만 5만원가량 붙는다. 또 은행을 최소 3곳 이상 거치다 보니 이체 완료까지 3일 이상이나 걸렸다. 정부는 핀테크 사업자 등을 통한 소액 외화이체를 통해 송금 수수료를 10분의 1 수준으로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은행들 업무수탁 꺼려…허울뿐인 정책

그러나 이 같은 정책의지가 결국 허울로 그칠 공산이 커졌다. 핀테크 스타트업이 소액 외화이체 사업을 하려면 시중은행과 협약을 맺어야 하지만 기존 은행들이 업무수탁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수수료 분배 등의 문제와 기존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당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기재부는 부랴부랴 은행과 핀테크 업체 간 협약 세부내용을 담을 표준계약 마련에 나섰다. 기재부 관계자는 "현재 몇몇 은행들이 업체들과 사업을 조율 중이지만 전반적으로 핀테크 업체들의 소액 해외이체 사업을 허용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원칙"이라며 "시장의 변화를 빠르게 반영하려고 노력했지만 업체들이 요구하는 것을 다 만족시키기는 어려워 과도기적인 측면이 있다"고 현재 제도적 한계를 인정했다.


외환 소액이체 애플리케이션(앱) 출시를 준비 중인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고객 모집만 하고 송금 처리에는 은행시스템을 이용하라고 하는 것은 서비스의 원천경쟁력을 없애는 것"이라며 "스타트업 입장에서 인프라 투자금에 대한 이자비용과 인건비 부담, 사무실 비용 등을 지출해가며 법이 개정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무리"라고 문제를 지적했다.

hjkim01@fnnews.com 김학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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