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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구의 소비자경제] 디지털 민주주의의 제안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4.21 17:14

수정 2016.04.21 17:14

[이성구의 소비자경제] 디지털 민주주의의 제안

지난번 20대 총선은 야권의 승리로 나타났다. 1인 1표로 사는 정치 소비자들의 구매 결과 가장 많이 정치상품을 판 것은 '더민주'였고, 3분의 2까지도 팔 것으로 내다봤던 '새누리'는 40%를 갓 넘는 데 그쳤다. 그럼 야당이 장사를 잘한 것일까.

물론 '새누리'가 자신들이 팔고 싶은 상품만 강매하려 했다는 비판을 듣는 것은 당연하지만 성공했다고 자축하는 야권의 실패도 그에 못지않다. 당초 동업자들이던 더민주와 '국민의당'이 장사를 못한(과거 선거에서 패배한) 사장(당 대표)이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갈라서서, 1개 선거구에 당선자 1명을 뽑는데 동업자 간 다툼으로 비슷한 상품을 내놓고 선택을 강요하는 것은 소비자를 혼란스럽게 하는 일이다.

실제 여권의 경우 공천 잡음에도 불구하고 탈당 무소속의 출마로 야권 후보가 당선된 경우는 거의 없는 데 반해, 더민주와 국민의당은 표를 분산시켜 여권이 당선한 경우가(만일 더민주나 국민의당 득표 중 3분의 1 정도는 상대편 표를 잠식한 것이라면) 어림잡아 16석이다. 그 대부분은 국민의당이 더민주 후보를 낙선시켜 야권 의석을 줄이는 역할을 한 것이지만, 더민주도 방관한 책임이 크다.
야권 내부의 권력 다툼으로 정치 소비자(유권자)의 선택을 왜곡한 셈이다.

물론 유권자를 무시한 여권의 독선적 공천권 행사가 민주주의의 위기로 인식되면서 야권의 승리를 가져왔지만, 유권자의 선택 왜곡 측면에서는 야권의 문제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야권 성향의 유권자들이 분열을 감안, 적극적으로 전략적 투표를 했다거나 여권 지지자들은 무관심(기권)했다는 해석은 자칫 정당의 실패를 방치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이번 총선이 보여준 것은 정당에만 의존해 정책을 결정하고 대표자를 뽑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권의 경우 비민주적 공천 과정으로 인해 소비자의 반감을 샀다면 야권은 내부 분열로 소비자 선택을 왜곡한 것인데, 여권이든 야권이든 진정한 반성은 보이지 않는다. 여권은 소비자보다 집권자의 눈에 맞춘 공천 과정의 잘못을 인정하기 싫고, 야권은 승리에 취해 소비자의 선택을 왜곡한 행위에 대한 반성이 없다.


창조경제만 외칠 것이 아니라 창조정치는 어떤가. 정당 공천의 법·제도적 프리미엄을 줄이는 한편, 무소속도 선호 정당을 표시할 수 있도록 하고 유권자는 1·2·3순위를 정해 투표한 뒤 가중치로 계산하거나 낙선후보 득표는 유권자가 정한 순서로 다른 후보에게 이전해 최종적으로 과반수 득표자가 당선되도록 한다면, 정당의 과도한 개입이나 결선투표도 필요 없이 한 차례 선거로 소비자가 가장 원하는 후보자를 선택하게 할 수 있다. 인터넷.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면 적은 비용으로도 선거는 물론 정책결정에서도 다수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신속하게 조정해 반영할 수 있다.
소수의 권력 다툼을 위해 다수의 의견과 선택을 왜곡하는 도구가 되어가는 정당의 역할을 견제하는 한편, 정치 소비자에게 정보와 신뢰를 주는 정당 기능을 강화하고, 일부의 선동적 네티즌에 의한 사이버상의 여론 편향을 막기 위해서도 소비자들이 직접 정치상품을 쉽게 고를 수 있는 디지털민주주의에 관한 논의를 적극화할 필요가 있다.

yisg@fnnews.com 이성구 fn소비자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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