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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을관계에 무너지는 기업투명성] "신용등급 낮게 주면 평가기관 바꿀 것"

강재웅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4.24 17:31

수정 2016.04.24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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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으름장에 제역할 못하는 파수꾼들.. 기업이 보수·수수료 줘
회계감사·신용평가 등 독립성 지켜지기 어려워.. 증시 '매도' 의견도 실종
#. A신용평가사 기업평가본부 담당자는 회사채를 신규발행하는 B기업의 신용등급평가 결과를 몇 번이고 고치고 또 고쳐야 했다. 다른 신평사보다 낮은 등급이 부여될 경우 평가기관을 갈아타겠다는 B사의 으름장 때문이다. 또 경쟁사에서 '예쁘게, 적절하게 해주겠다'며 기업에 접근해, 영업을 무시할 수 없어 수정해줄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투명한 정보공개를 통해 주주나 투자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거짓 없이 투명한 기업운영을 한다는 의미인 기업투명성이 '갑을관계'로 왜곡되고 있다. 자본시장의 파수꾼인 공인회계사, 신용평가사 등이 영업전선에 내몰리며 제대로 된 '쓴소리'를 낼 수 없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먹이사슬이 끊어져야 왜곡현상이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2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행 회계감사시장은 계약방법과 가격이 완전히 사적 자율에 맡겨져 있어 기업이 전적으로 자유선임할 수 있다. 가격과 보수도 기업이 무제한 자유결정하게 된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감사계약은 기업이 혈연.지연.학연 등을 감안해 연고 관계자를 지명할 수 있다. 따라서 외부감사인은 독립적인 관계라기보다는 특수관계자 간 영업에 따른 종속적인 갑을관계에 서있을 수밖에 없다.

신용평가시장도 엇비슷하다. 기업이 좋은 신용등급을 받을 수 있는 신용평가사를 찾는 이른바 '등급쇼핑(Rating Shoppin)'에 나서기도 한다. 즉, 발행사가 신용평가사에 수수료를 지불하는 구조이다 보니 평가사 독립성은 지켜지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신용평가업계 한 고위관계자는 "특히 미국 등 선진시장과 비교해 국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며 "우리나라는 투자자 스크리닝 기능이 열악하다 보니 유독 발행사 입김이 세다"고 귀띔했다.

주식시장에서도 '매수' 의견만이 존재하고 '매도' 의견은 실종된 상태다. 올 1.4분기 50개 증권사가 발간한 투자 보고서 중 매도 의견의 비중은 평균 5.2%에 그쳤다. 아예 매도 의견을 내지 않는 증권사도 24개사에 달했다. 매도 의견이 없는 이유는 기업들과의 유대관계를 등지고 매도 리포트를 쓰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즉, 투자자들에게 기업의 좋고 나쁨을 기준을 직간접적으로 제시하는 회계감사.신용평가사.주식시장 등 3대 시장이 '갑을관계'에 얽매여 있다 보니 기업에 제대로 된 쓴소리를 낼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쓴소리를 하지 않는 것이 이들 3대 시장에 일종의 불문율처럼 돼있다는 것이 종사자들의 하소연이다. 이 때문에 기업이 모든 결정권을 갖지 못하는 시스템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회계감사시장에서는 자율수임보다는 지정감사제로, 신용평가는 민간보다는 공공기관이 관여하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는 것.

한 회계법인 임원은 "회계감사나 신용평가 등의 시장에서도 기업이 비용을 내기 때문에 사실상 '갑'의 위치에 있어 이들에게 쓴소리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kjw@fnnews.com 강재웅 고민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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