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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으름장에 제역할 못하는 파수꾼들.. 기업이 보수·수수료 줘
회계감사·신용평가 등 독립성 지켜지기 어려워.. 증시 '매도' 의견도 실종
#. A신용평가사 기업평가본부 담당자는 회사채를 신규발행하는 B기업의 신용등급평가 결과를 몇 번이고 고치고 또 고쳐야 했다. 다른 신평사보다 낮은 등급이 부여될 경우 평가기관을 갈아타겠다는 B사의 으름장 때문이다. 또 경쟁사에서 '예쁘게, 적절하게 해주겠다'며 기업에 접근해, 영업을 무시할 수 없어 수정해줄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회계감사·신용평가 등 독립성 지켜지기 어려워.. 증시 '매도' 의견도 실종
투명한 정보공개를 통해 주주나 투자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거짓 없이 투명한 기업운영을 한다는 의미인 기업투명성이 '갑을관계'로 왜곡되고 있다. 자본시장의 파수꾼인 공인회계사, 신용평가사 등이 영업전선에 내몰리며 제대로 된 '쓴소리'를 낼 수 없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먹이사슬이 끊어져야 왜곡현상이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2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행 회계감사시장은 계약방법과 가격이 완전히 사적 자율에 맡겨져 있어 기업이 전적으로 자유선임할 수 있다. 가격과 보수도 기업이 무제한 자유결정하게 된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감사계약은 기업이 혈연.지연.학연 등을 감안해 연고 관계자를 지명할 수 있다. 따라서 외부감사인은 독립적인 관계라기보다는 특수관계자 간 영업에 따른 종속적인 갑을관계에 서있을 수밖에 없다.
신용평가시장도 엇비슷하다. 기업이 좋은 신용등급을 받을 수 있는 신용평가사를 찾는 이른바 '등급쇼핑(Rating Shoppin)'에 나서기도 한다. 즉, 발행사가 신용평가사에 수수료를 지불하는 구조이다 보니 평가사 독립성은 지켜지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신용평가업계 한 고위관계자는 "특히 미국 등 선진시장과 비교해 국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며 "우리나라는 투자자 스크리닝 기능이 열악하다 보니 유독 발행사 입김이 세다"고 귀띔했다.
주식시장에서도 '매수' 의견만이 존재하고 '매도' 의견은 실종된 상태다. 올 1.4분기 50개 증권사가 발간한 투자 보고서 중 매도 의견의 비중은 평균 5.2%에 그쳤다. 아예 매도 의견을 내지 않는 증권사도 24개사에 달했다. 매도 의견이 없는 이유는 기업들과의 유대관계를 등지고 매도 리포트를 쓰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즉, 투자자들에게 기업의 좋고 나쁨을 기준을 직간접적으로 제시하는 회계감사.신용평가사.주식시장 등 3대 시장이 '갑을관계'에 얽매여 있다 보니 기업에 제대로 된 쓴소리를 낼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쓴소리를 하지 않는 것이 이들 3대 시장에 일종의 불문율처럼 돼있다는 것이 종사자들의 하소연이다. 이 때문에 기업이 모든 결정권을 갖지 못하는 시스템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회계감사시장에서는 자율수임보다는 지정감사제로, 신용평가는 민간보다는 공공기관이 관여하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는 것.
한 회계법인 임원은 "회계감사나 신용평가 등의 시장에서도 기업이 비용을 내기 때문에 사실상 '갑'의 위치에 있어 이들에게 쓴소리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kjw@fnnews.com 강재웅 고민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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