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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대량이주의 무기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4.27 17:31

수정 2016.04.27 21:52

[fn논단] 대량이주의 무기

'러시아가 난민을 무기화하고 있다.' '대량살상의 무기(WMD)에서 대량이주의 무기(WMM·weapons of mass migration)로 바뀌었다.' 러시아가 지난해 10월 초 시리아 내전에 군사개입을 한 후 유럽 및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은 러시아의 전략을 이같이 규정하며 비판을 퍼부었다. 이런 비판은 과연 타당한가. 러시아 개입 이전의 상황과 비교하면 이런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그리고 대량이주를 무기로 만든다는 더 큰 맥락에서 보면 이런 움직임은 앞으로도 지속될 듯하다.

러시아는 시리아 내전에 개입한 뒤 반군이 점령 중인 알레포(Aleppo) 공습에 매진했다.
우세한 제공권을 바탕으로 반군이 장악했던 지역을 집중 공습해 아사드 정부군이 이 지역에 교두보를 확보하게 도와주었다. 그런데 러시아 공군은 반군을 겨냥해 정밀폭탄을 투하하지 않았다. 러시아는 통폭탄(barrel bomb)을 집중적으로 떨어뜨렸다. 이는 급조된 폭탄으로 큰 금속통에 폭탄을 설치해 공중에서 투하한다. 시리아 공군도 마찬가지로 이 폭탄을 주로 사용했다. 넓은 지역에 떨어뜨려 공포심을 조장하는 게 목표다. 이 시에 거주하던 수십만명의 주민이 언제 터질지도 모르는 폭탄의 두려움을 피해 터키 국경지대로 몰려갔다. 너무 많은 난민이 일시에 몰려드는 바람에 터키는 지난 2월 초 이 지역의 국경 초소를 일시적으로 폐쇄했다. 다행히 2월 말부터 시리아 내전이 휴전에 들어갔다. 하지만 푸틴은 이 카드를 원하는 대로 사용할 수 있다.

필립 브리드러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령관은 지난달 1일 미 상원 청문회에서 러시아와 시리아의 아사드 정부가 "난민을 무기화한다"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이주라는 큰 틀에서 보면 인력 이동의 통제권이 수용국에서 송출국으로 조금씩 바뀌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국들은 이전에 경제적 필요에 따라 이민이나 난민을 선별적으로 수용할 수 있었다. 이렇듯 당연하던 정책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사태가 겹치면서 난민이 폭증했다. 이런 난민을 선진국들이 법이나 포퓰리스트 정당의 반발을 이유로 수용을 마냥 거부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시리아나 이라크 난민들이 독일이나 스웨덴으로 몰려 든 데는 양국의 너그러운 난민정책이 있다. 또 양국에 이미 많은 중동 난민들이 정착해 살고 있기에 난민 희망자들도 두 나라로 가고 싶어 했다.

유럽의 난민위기로 가장 큰 혜택을 입은 나라는 터키다. 권위주의적인 레제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야당과 비판적인 언론을 탄압하며 유럽연합(EU)의 멸시를 받아 왔다. 그런데 유럽으로 급증하는 난민을 통제할 수 있는 열쇠를 터키가 쥐고 있어 독일은 그동안의 인권외교를 헌신짝처럼 던져버리고 터키와 EU의 난민 협상을 주도했다. 터키가 난민촌에 거주 중인 250만명이 넘는 시리아 난민의 유출 통제를 조금만 늦추어도 이제 독일과 몇몇 EU 회원국들은 난민이 몰려드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몰리게 됐다. '악마와 파우스트의 거래'라 불리는 이유다.

푸틴과 에르도안은 이제 대량이주의 무기를 손에 쥐었다.
두 사람 다 장기집권 중이고 유럽을 대상으로 이 무기를 휘두를 수 있다. '유럽'으로 들어오는 난민의 숫자는 줄었지만 EU 회원국 간에 경제력에 비례한 난민의 의무배당은 쉽지 않다.
위기 앞에서 공동대응을 강화해 EU가 대량이주의 무기를 방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안병억 대구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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