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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가습기 살균제로 심장·폐 이식한 4세 아이, 수술 성공으로 생존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5.02 11:47

수정 2016.05.02 11:47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폐 섬유화 등 폐 손상을 입은 4세 여아에게 어린이 심장·폐 이식수술이 실시돼 성공을 거뒀다.

이 여아의 엄마, 여동생 등 한 가족 세 명이 가습기 살균제 탓에 폐 손상을 입었다. 이 중 1명이 숨지고 2명이 에크모 장착, 장기 이식 등 사투를 벌였다.

2일 서울아산병원에 따르면 소아청소년 호흡기알레르기과 유진호 교수팀은 2011년 6월 11일 병원에 입원한 4세(당시) 여아가 가습기 살균제의 독성(살균) 성분을 오래 들이마셔 간질성 폐 질환에 걸린 것으로 진단했다. 이 여아는 서울아산병원에서 100일간 에크모(체외막형산소화장치)의 도움으로 생명을 유지하다가 어린이로선 국내 첫 심장·폐를 함께 이식 받는 대수술을 받았다.

유 교수팀은 "이식수술을 한 지 3년 후에 실시한 아이의 폐 기능 검사에서 비교적 양호한 결과가 얻어졌다"며 "폐 이식 수술 후에 뒤따르기 쉬운 폐 고혈압·폐쇄성 세기관지염(bronchiolitis obliterans)도 없었다"고 밝혔다.


2011년 봄 아이에게 마른기침 등 그리 심각하지 않은 증상이 나타났다. 처음엔 감기 등 흔한 호흡기 질환으로 여겼다. 초기 증상이 나타난 지 2주 뒤부터 빈호흡(호흡수 증가)ㆍ호흡곤란 등 상태가 악화됐다. 아이의 엄마와 여동생(1세)도 비슷한 증상을 보였다. 병원 측이 항생제와 스테로이드 호르몬제(프레드니솔론) 등을 투약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유 교수팀은 "아이의 가족은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 성분이 포함된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PHMG는 최다 사망자를 낸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다. 아이의 1세 여동생은 불행히도 대형 병원으로 옮겨지기 전에 숨졌다.

아이 엄마는 5일간 에크모의 도움을 받았지만 폐 이식 후 큰 후유증이 없이 회복됐다.

병원에 처음 입원했을 당시의 아이의 상태는 호흡수 분당 77회, 맥박 분당 136회, 혈압 113/81이었다. 이후 아이에게 공기누출증후군, 폐기종 등 심각한 증상이 나타나 바로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생명 유지가 힘든 상태였다.

아이는 에크모에 의존해 폐 등 장기 제공자가 나올 때까지 100일을 버텼다. 마침내 뇌사 판정을 받은 11세 소녀의 폐와 심장을 이식받았다.

국제심장·폐 이식협회(ISHLT)에 따르면 심장·폐 이식수술은 성인의 경우 1963년, 어린이에선 1986년에 처음 실시됐다.

2012년 기준으로 전세계에서 성인의 연간 폐 이식수술 건수는 4만3428건, 심장·폐 이식수술 건수는 3703건에 달한다. 어린이의 경우 폐 이식과 폐·심장 이식이 각각 1875건, 667건 이뤄지고 있다.

국내에서 성인의 폐 이식 수술은 1996년에 처음 시도됐다. 어린이의 폐 이식 수술은 이 4세 여아가 첫 사례다.

유 교수팀은 "어린이의 폐와 폐·심장 이식에는 걸림돌이 많다"며 "장기 제공자(뇌사자) 수가 적은데다, 제공자와 수혜자의 장기 크기가 다르고 외과 기술적으로도 훨씬 고난도 수술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번에도 장기를 제공한 뇌사아의 체중은 23.1㎏으로 장기를 받은 아이(17㎏)보다 1.3배 컸다.

유 교수팀은 "장기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의존해야 하는 에크모, 기계적 환기장치 등의 장착 기간이 길수록 이식 수술 뒤 다(多)장기 부전 등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릴 위험이 높다"며 "이번에도 에크모를 5일간 장착한 아이 엄마의 수술 후 후유증은 거의 없었다"고 지적했다.

전 세계적으로 폐 이식 수술을 받은 어린이의 5년 생존율은 50% 정도다. 폐 이식수술을 받은 지 5년이 지난 다음에 숨지는 아이의 사인 1위는 폐쇄성 세기관지염이다.


이번 연구결과는 대한의학회가 발행하는 영문 학술지인 JKMS(Journal of Korean Medical Science) 최근호에 소개됐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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