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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안동현 자본시장연구원장 "한은, 발권력 동원 수동적 모습 아쉬워"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5.05 17:11

수정 2016.05.07 15:27

정치적 악용, 신용도 저하 등 기업 구조조정 부작용 생각해야
안동현 자본시장연구원장 사진=박범준 기자
안동현 자본시장연구원장 사진=박범준 기자

"차라리 한국은행이 '우리는 어떤 조건하에서 어떻게 하겠다'고 선수를 치는 것이 좋았을 텐데요."

최근 기업 구조조정 국면에서 가장 화두로 떠오른 한은의 발권력 동원 문제에 대해 통화정책 권위자인 안동현 자본시장연구원장(사진)은 '샌님' 한은이 '주인공' 역할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청와대, 정부가 사실상 기업 구조조정 재원으로 한은 발권력이 유력하다는 것을 공론화한 가운데 한은이 연신 수동적인 모습을 보이는 데 대해서다.

지난달 28일 기자와 만난 안 원장은 "'무조건 돈 못 찍는다'고 하는 것이 독립성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발권력은 동원할 수도 있는 것"이라면서 "단, 그것이 청와대·정부와 동등한 위치에서 수평적으로 토론해 얻은 산출물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은이 기업 구조조정과 관련해 돈을 절대 찍지 않겠다고 완강히 버틴 적이 없는데, 청와대나 정부가 일방적으로 이를 강요하는 것이 오히려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다.



"통상 구조조정을 하면 그해는 물론 향후 몇 년은 성장률 하락을 감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정부가 이걸 하고 싶어 하겠습니까. 그러나 사과박스에 썩은 사과 하나를 놔두면 다 번져서 사과박스 전체가 썩습니다. 구조조정은 더 이상 늦추면 안됩니다."

안 원장은 기업 구조조정이 정부가 선제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것에는 공감하면서도 △물가상승(인플레이션) △정치적 악용(독립성 침해) △대외신용도 저하 등 부작용에 대해서는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봤다. 그는 "지금 워낙 저물가이기 때문에 인플레에 대한 우려는 상대적으로 낮지만, 나머지 두 개 부작용에 대해서는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신임 자본시장연구원장으로 임명된 안 원장은 학계에선 일찍부터 유명세를 떨친 자타공인 자본시장, 통화정책 전문가다. 82학번으로 고려대 경영대에 입학한 안 원장은 그곳에서 평생 은사인 이필상 서울대 경제학과 겸임교수(전 고려대 총장)를 만나 재무(finance)에 눈을 뜬다. 우리나라 대표 재무통인 이 교수 밑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바늘구멍보다 뚫기 어렵다는 뉴욕대학교(NYU) 대학원 경영학 박사과정에 진학한다.

"미국은 한국보다 지도교수에게 '잘 보여야' 하는 정도가 훨씬 셉니다. " 안 원장은 박사과정 시절 지도교수의 논문 작성을 도운 기억밖에 없다고 했다. 덕분에 양질의 논문을 작성할 때 필요한 프로그램과 수학에 도가 텄다.

1996년 NYU를 졸업한 동문 중에서는 '가장 잘 팔려' 갔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UNC)의 경영대학 조교수로 임용된 것. 탁월한 논문실적 덕분에 조교수로는 드물게 박사도 많이 배출했다. 그는 2000년부터 1년간 잠시 모교에서 근무하고 2002년부터는 다시 UNC 경제대학 부교수로 옮겼다. 안 원장은 경영.경제를 넘나들며 학술적으로 인정받았다.

이후 2004년 서울대 경제학과로 자리를 옮긴 안 원장은 박사시절 갈고닦은 수학, 전략 스킬로 2006년 영국 국영은행 RBS의 채권 헤드로 스카우트된다. 주로 파생상품과 퀀트 전략을 담당했던 안 원장은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를 은행권 한복판에서 경험하게 된다.


"은행이 어떻게 부실이 되고, 그때 사람들의 패닉 상황은 어땠는지를 바로 옆에서 생생하게 목격했죠. 그러면서 경제주체의 심리적인 부분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2년 간의 짧은 '외도'를 마치고 다시 서울대로 복귀한 그는 금융위기와 통화정책 분야로 눈을 돌려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 국민경제자문위원회, 금융발전심의위원회,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쳐 왔다.
안 원장은 "임기 3년동안 자본시장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소회를 밝혔다. psy@fnnews.com 박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