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막말' 두테르테,필리핀 70년 세습정치 깼다...'친미반중' 정책 바뀌나

정상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5.10 16:19

수정 2016.05.10 16:40

'강력한 지도자인가. 또다른 독재자의 탄생인가'.

10일(현지시간) 필리핀 대선 개표 결과, 막말을 서슴지 않고 극단적 공약을 내세운 야당 후보가 승리했다. '필리핀의 트럼프'라 불리는 검사 출신 강성 정치인 로드리고 두테르테다. 심각한 빈부 격차와 만연한 범죄, 부패 정치에 실망한 중하층 유권자의 전폭적 지지가 승리 요인이다. 그에 대해 '세습 정치의 고리를 끊은 선동가이자 포퓰리스트(인기영합주의자)', '인권을 외면한 초법적인 독재자의 출현'이라는 평가와 우려가 함께 나오고 있다. 그의 과격한 정책과 비상식적인 발언 때문이다. 필리핀의 기존 정치·외교질서도 급변이 예상된다.
전통적 우방인 미국, 호주 등과의 외교 관계에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특히 남중국해 영해 갈등을 빚고 있는 중국과는 실리적인 관계 변화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CNN방송 등에 따르면 필리핀 대선에서 민주필리핀당 소속 두테르테 다바오시 시장이 집권여당 후보를 압도적 표차로 제치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필리핀 선거감시단체 PPCRV는 이날 89%의 개표 상황에서 두테르테가 38.6%를 득표, 집권자유당(LP) 소속의 로하스 후보(23.1%)를 큰 표차로 앞서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대통령 당선이 확정되자 두테르테는 "국민의 뜻을 겸손하게 받아들인다. 국민을 위해 온 힘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두테르테 진영의 피터 라비냐 대변인은 이날 "대통령제의 실패를 지켜봤다. 대대적 개헌이 이루어질 것"이라며 대통령 6년 단임제를 폐지하고 의원내각제 도입을 시사했다. 그는 "2019년 국민투표로 개헌안을 처리할 것"이라고 했다. 두테르테 집권 초반 필리핀 정국의 급변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상당수 국민들은 부정부패와 범죄를 척결할 강력한 지도자를 원했다. 기득권의 부패와 극심한 빈부격차, 끊이지 않는 강력 범죄 등에 필리핀 국민들은 현 정부를 불신했다. 이는 80%를 넘는 높은 대선 투표율로 나타났다.

이런 정서를 두테르테는 극단적인 발언으로 자극했다. 그는 "대통령 취임 6개월 안에 (마약상, 청부살인업자 등) 범죄자 10만명을 죽여 마닐라만에 버리겠다"고 했다. 또 "썩은 정치인과 공무원, 군을 모두 쓸어버리겠다"며 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했다. 빈곤층들은 그의 자극적인 발언에 동요했고, 위선적인 세습 정치인에 대한 반감을 끄집어냈다. 필리핀은 인구의 4분의 1이 빈곤층이다. 화교 세력 '코후앙코' 등 정치가문들은 국가 권력은 물론 부(富)의 7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베그니노 아키노 현 정부가 지난 5년여간 6%이상의 높은 경제성장을 실현했지만, 이익은 권력자와 부유층들에게 돌아갔다. 중하층 국민들의 반감은 더 커졌고, 이번 대선에서 두테르테의 지지로 이어졌다.

두테르테는 권력 가문이 아니다. 비교적 유복한 법조계 집안의 아들이다. 그는 사법시험을 봐서 지방검사로 일했다. 40대 초반이던 1988년 두테르테는 인구 150만명의 남부도시 다바오 시장에 취임했다. 필리핀의 대표적인 우범도시다. 22년간 시장을 맡으면서 강력한 '범죄와의 전쟁' 으로 신망을 얻었다. 그렇지만 법을 잘 아는 그가 재판없이 마약사범 등 범법자 처벌을 집행했다. 당시 그는 1000명이 넘는 범죄자를 정식 재판 없이 처형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가 '징벌자'라는 별명을 얻은 것도 이 때다. 독재는 인권과 상충된다. 인권단체들은 그의 초법적 인권유린 행위를 고발했다. 1986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독재정권을 몰아낸 '피플파워' 혁명으로 어렵게 얻어낸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아키노 대통령도 "그(두테르테)가 대통령이 되면 독재정권으로 되돌아간다"고 비난했다.

필리핀의 외교 관계에도 불확실성이 커졌다. '중국의 팽창'을 억지하고 '아시아재균형 전략'을 추구하는 미국 입장에선 두테르테의 당선이 껄끄러운 일이다. 필리핀은 미국의 동남아 전략국이다. 아키노 정부도 '친미반중' 성향이 강하다. 하지만 외신들은 "미국은 필리핀과 새로운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외교적 마찰은 물론이고, 인권 문제가 미국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대선 기간중 두테르테의 막말이 우방국을 자극했다. 지난 4월, 과거 살해당한 여성선교사에 대한 비상식적인 발언으로 당사국인 호주는 물론 미국 정부까지 합세해 비난하자 두테르테는 "대통령이 되면 (양국과의) 외교관계를 끊어버리겠다"는 폭언을 서슴지않았다.

특히 영해 분쟁으로 적대적인 중국과는 관계 변화가 예상된다. 두테르테는 현지언론 인터뷰에서 "원유와 천연가스 개발에 중국과 협력할 수 있다"고 했다. 앞서 그는 남중국해 영해 갈등에 대해 "중국과 양자회담을 갖겠다"고 전향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런 점에서 두테르테 정권은 중국의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 전략 등에 참여해 실리를 우선하는 외교로 관계 개선에 나설 것이 유력하다. 필리핀은 남중국해 영유권을 놓고 국제재판소에 중국을 제소한 상태다.


한편, 전날 함께 치러진 필리핀 부통령 선거에서 독재자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 마르코스 주니어 상원의원의 당선이 확실시된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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