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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일 칼럼] 가습기 살균제, 국회가 나서야 하지만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5.10 16:43

수정 2016.05.10 16:43

[노동일 칼럼] 가습기 살균제, 국회가 나서야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사건이라고 불러 마땅하다. 단순한 감정적 언사가 아니다. 그것을 만든 사람들은 살균제가 해롭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실험실에서 사용하는 숱한 화학물질들의 독성은 상식에 속한다. 쇠를 녹이고 부식을 일으키는 물질로 사람들이 직접 호흡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판매한 죄는 가볍지 않다. 검찰 수사로 반드시 상응하는 죗값을 치르게 해야 한다.
개운치 않은 건 그다음이다.

일개 기업(인)을 처벌하는 것으로 족할까. 결코 그렇지 않다. 검찰 수사는 형사책임을 지우기 위해서다. 엄격한 증거에 입각해야 한다. 문제는 다른 수많은 '책임자'들이다. 살균제로 수백명의 사망자가 날 때까지 방치한 우리 사회의 얽힌 고리가 수사 대상이 되기는 어렵다. 기업이야 이윤을 우선으로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도외시했다 치자. 이를 감독해야 할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왜 이제야 정부가 나서고 검찰도 뒷북을 치는지 알고 싶다. 관련된 정부 부처와 공무원들은 검찰 수사와 무관할 것이다. 하지만 살균제의 유해성을 입증하는 연구 결과를 도출하고도 무시한 질병관리본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보건복지부 등의 행태에는 분노가 치민다. 복지부동을 넘어 존재 이유를 의심케 하는 공무원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 노릇이다.

정부의 규제 때문에 제품 개발부터 판매에 이르기까지 어려움이 많다는 게 기업의 일반적 호소다. 가습기 살균제의 경우 정부의 규제가 허술했던 이유를 밝혀내야 한다. 옥시라는 한 기업만의 문제도 아니다. 원료 물질을 만든 기업, 이를 사용해 살균제를 만든 다른 기업들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연구라는 명목으로 유독물질의 안전성을 보증해 준 학계의 뒷받침은 없었는지도 궁금하다. 데이터 조작 등의 혐의로 서울대 조모 교수가 구속됐지만 진상은 확실치 않다. 자신은 정확한 사실을 알렸음에도 옥시와 로펌 측이 유리한 부분만 부각시켰다는 주장이다. 지금까지 진상이 묻히고 검찰 수사가 이뤄지지 않은 데 법률가들의 적극적 역할이 있었는지도 파헤쳐야 한다.

범죄에 이르지 않더라도 그에 버금가는 정부의 정책 실패와 구조적 모순이 얽혀 있는 게 이번 사건이다.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할 리는 만무하다. 태풍이 지나기만 기다릴 것이다. 국회가 나서지 않으면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기 어렵다. 정치권이 청문회와 국정조사가 필요하다고 치고 나온 것은 그래서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동안의 행태로 보아 미덥지는 않다. 중요한 사안일수록 정치공방으로 지새우면서 더 미궁으로 빠뜨린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청문회 시기를 놓고 벌써 입씨름을 벌이는 게 조짐이 좋지 않다. 여당은 면피용으로, 야당은 정부·여당을 공격할 호재로 접근한다면 결과는 보나 마나다. 국정조사는 어차피 수사 중인 사안에는 관여할 수 없다. 시기적으로 본격 국정조사는 20대 국회에서나 할 수 있다. 지금부터 철저히 준비해 제대로 된 국정조사와 청문회를 하자고 합의하면 된다. 정치권이 그동안 할일을 했는지도 따져야 한다. 여러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잠자고 있던 이유도 밝혀야 한다. 이번 사건은 20대 국회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수 있을지 중대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국정조사와 청문회를 거쳐 정부가 제대로 된 정책을 만들 수 있도록 견인하는 역량을 보여야 한다. 우리 국민이 안전사회에 살 수 있는지도 이번 사건에 달려 있다.
미덥지 않지만 국민이 믿을 곳이라고는 국회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새기기 바란다.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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