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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는 혁신 못한다"...글로벌 IT기업들 M&A로 산업주도권 지킨다

김미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5.22 12:48

수정 2016.05.22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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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서는 강한 규제와 부정적 인식에 걸려 M&A 꺼려 
#. PC 제조업체 델(DELL)이 지난해 세계 최대 데이터 스토리지(데이터 저장장치) 업체인 EMC를 670억 달러(약 79조7000억원)에 인수했다. 델은 이번 인수합병(M&A)을 통해 EMC가 8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던 서버가상화 및 클라우드 업체 VM웨어도 품게 됐다. 마이클 델 회장은 M&A의 의미에 대해 "오는 2030년 모든 기기와 인간이 연결되는 만물인터넷(Internet of Everything, IoE) 시대가 열리면서 엄청난 데이터가 쏟아질 것"이라며 "이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며 지배하는 업체가 미래를 지배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델이 PC제조사에서 데이터 관리 전문회사로 변신하겠다고 결정하면서 선택한 방법이 EMC 인수였던 것이다.
세계 정보기술(IT) 산업 지형변화의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PC는 30년 이상 세계 정보기술(IT) 시장의 최대 성장산업으로 영광을 누렸지만, 스마트폰은 세상에 나온지 10년만에 쇠퇴기를 걱정해야 할 정도다.


빠른 산업의 변화속도에 맞추기 위해 글로벌 IT 산업을 쥐락펴락하는 소위 'FANG(페이스북,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의 첫 영문 알파벳 조합)'과 'BAT(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를 일컫는 말)'는 전방위적인 M&A로 시장 주도권 유지와 변신을 지속하고 있다.

구글은 지난 2014년 인공지능 전문회사 딥마인드를 인수한 뒤 2년만인 올해 기업의 전략을 수정했다. 그동안 모바일 사업을 최고의 가치로 내걸었던 '모바일 퍼스트(Mobile First)'를 '인공지능 퍼스트(AI First)'로 전환한 것이다.

결국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과 시장의 변화를 혼자 힘으로 따라잡을 수 없다고 판단한 글로벌 공룡 기업들이 M&A에서 해법을 찾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국내 대형 IT업체들은 전략적 제휴를 포함한 M&A에 여전히 소극적인 실정이다. 정부의 M&A 규제가 강한 것이 국내 기업들의 M&A를 소극적으로 이끌어가는 원인으로 꼽힌다. 여기다 '문어발식 사업 확장'이라는 소비자와 국민들의 대중의 부정적 인식에 대한 두려움도 한국 기업들이 M&A를 꺼리는 원인으로 꼽힌다. 아울러 기업들도 과거 한두번의 M&A 실패에 대한 불안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산업변화 빠를 수록 M&A 늘어난다...전 세계 M&A 시장 규모 최대
22일 글로벌 시장조사업체인 딜로직(Dealogic)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M&A 시장 거래 규모는 5조 달러(약 5857조5000억원)를 넘어서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2000년 대 중반 증가했던 M&A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크게 위축됐지만, 2014년을 기점으로 활기를 되찾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최근엔 인수 규모가 100억 달러(약 11조7000억원) 이상의 '메가딜(Megadeal)'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글로벌 기업들의 생존전략이 장기 투자 대신 M&A를 통해 시장 영향력을 확대하고 수익성을 유지하는 쪽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LG경제연구원 박종석 책임연구원은 "M&A시장에서 인수기업과 피인수기업의 국적이 매우 다양해지는 것은 물론, 헬스케어, IT, 전자 등으로 분야도 확대되고 있다"며 "올해도 글로벌 기업들은 전 세계 저성장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방편으로 M&A를 지속적으로 전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임형규 글로벌창업팀장은 "구글은 매년 인수한 기업 리스트만 확인해도 미래 전략을 파악할 수 있을 만큼 전략적으로 M&A를 진행하고 있다"며 "기업마다 새로운 기술을 유입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 다르기 때문에 누가 꼭 정답이라 할 수는 없지만, 벤처생태계 활성화와 기업의 개방혁 혁신을 위해서라도 좋은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창업초기기업)을 적정한 대가를 주고 인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IT분야에서 구글과 페이스북, 알리바바 등은 M&A를 통해 차세대 기술 및 서비스를 선점하고 있으며, 시스코는 '사들이고(Buy), 개발하고(Build), 파트너와 협력(Partner)'라는 핵심 M&A 전략을 통해 지난 20년 간 기업을 지속적으로 성장시켜 왔다.

존 챔버스 전 시스코 최고경영자(CEO)는 "M&A 승패의 관건은 인수한 기술을 기존 기술이나 비즈니스와 어떻게 통합해서 활용할 것인가에 있다"며 "점점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어 신속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국내는 규제 리스크에 '발목'
반면 국내 IT업계는 M&A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그나마 삼성전자가 미국과 이스라엘 등을 오가며 스타트업 인수에 공을 들이고 있으며, 네이버는 테크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창업보육기관)인 'D2 스타트업 팩토리(D2SF)'를 운영하며 각종 민·관 펀드를 통해 간접투자 형태로 테크 스타트업 생태계를 조성하는게 국내 M&A의 수준이다.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공격적인 M&A는 아직 찾아보기 어렵다.

이에 대해 국내 전문가들은 "당분간 국내 IT업계의 활발한 M&A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어 M&A를 통해 이뤄지는 빠른 기술혁신과 산업변화에서 국내 기업들이 도태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낳고 있다.

현행 대기업 집단 지정제도는 수십개에 달하는 규제 리스크로 인해 기업들이 M&A를 기피하는 핵심 이유로 제기됐다. 실제 카카오는 지난해 스마트폰 내비게이션 애플리케이션(앱) '국민내비 김기사'와 멜론을 서비스하는 로엔엔터테인먼트 등 대형 M&A를 진행하며 역량을 강화하던 중 대기업집단 지정이라는 덫에 걸렸다.

그나마 최근 열린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개선 움직임이 감지됐지만, 대규모 기업집단지정제도는 공정거래법은 물론 중소기업기본법과 벤처산업육성법 등 50개 넘는 법령과 맞물려 있는 탓에 관련법 개정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대기업의 M&A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대기업들이 M&A에 공격적으로 나설 수 없도록 하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와함께 국내 창업 생태계가 O2O(온라인·오프라인 연계) 등 서비스 중심으로 형성된 까닭에 인수할 만한 테크 스타트업이 부족하다는 것도 국내 M&A가 활성화도지 못하는 원인으로 지적된다.

국내 한 인터넷 업체 관계자는 "과거 국내 대기업들의 전통적인 문어발식 확장은 기업의 몸집 키우기나 재벌가의 수익 확보 차원에서 해당 기업의 전문 영역이 아닌 곳에 자본력을 무기로 무리하게 진출하다보니 생긴 부작용이 큰 반면 IT기업들은 기존 서비스와 연계해 자체 플랫폼을 강화하는 형태로 스타트업을 인수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어발 확장'과 '골목상권 침해'라는 프레임에 갇혀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elikim@fnnews.com 김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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