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美대선 '트럼프 열풍' 진단] '팍스 아메리카나'에 질린 미국, 분노하는 트럼프에 환호하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5.16 17:22

수정 2016.05.17 10:01

팍스 아메리카나 : 자국민의 이익보다 '세계경찰' 체면만 챙기는 미국
왜 트럼프에게 열광하나
명분만 내세우던 美 사회.. 금융위기·IS 충격에 가치관 혼란
진보·동성애자·무슬림 등 反트럼프 세력까지 막말에 공감
힐러리 기존 정치세력으로 인식.. 월街 거액 지원받는 것에 반감
【 뉴욕·로스앤젤레스=정지원 서혜진 특파원】 미국 공화당의 사실상 대선 후보로 자리매김한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의 돌풍이 무섭다. "멕시코와 국경을 차단하기 위해 대형 장벽을 세우겠다"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겠다" "미국의 경제는 중국으로부터 '강간' 당하고 있다"는 등의 막말에도 지지율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민주당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바짝 뒤쫓고 있다. 인종차별, 여성비하, 보호주의 일색의 경제관 등을 확연하게 드러내는 워싱턴 정계의 아웃사이더에게 미국인들이 이처럼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美대선 '트럼프 열풍' 진단] '팍스 아메리카나'에 질린 미국, 분노하는 트럼프에 환호하다

미국 주요 언론들은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반감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언제부터인가 미국에서는 이 단어가 문화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정치적 올바름'이란 인종과 민족, 종교, 성별 등에 대한 사회의 차별과 편견을 없애자는 취지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 미국 중산층 붕괴와 이슬람국가(IS)를 비롯한 테러조직의 위협으로 미국 사회는 도덕과 품위, 공정 등 가치관이 무너지면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반감이 생겨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정치적 올바름'에 아랑곳하지 않고 서슴없이 막말을 내뱉는 트럼프에 미국 유권자들은 환호하고 있다.

올 초 트럼프가 공화당의 대선 선두주자로 나서자 미국 언론은 여러 가지 분석을 내놓았다. 그중 하나는 트럼프에 대한 지지는 일시적 사회현상일 뿐 곧 그에 대한 인기가 시들해질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언론은 트럼프를 '광대' '허풍선이' 등으로 표현하며 그의 대선 도전에 무게를 실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트럼프는 공화당의 다른 후보들을 압도적 표차로 누르며 당의 대선 후보 지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아무리 언론에서 트럼프의 인격과 대통령 후보로서의 자격을 깎아내리고 있지만 '표'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의 지지층은 백인층이 대다수인 것은 사실이지만 소득과 인종, 종교를 막론하고 다양한 보수 유권자로 구성돼 있다"며 "트럼프 지지자들은 미국의 새로운 보수층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 중에는 한때 '월가 점령' 시위에도 참여했던 진보성향의 20대 남성, 동성애자, 심지어는 무슬림 학생까지 다양했다.

트럼프의 막말은 비록 '정치적 올바름'에서 완전히 벗어난 일시적 막말로 들리지만 대다수 미국 유권자와 코드를 함께하는 기가 막힌 정치적 묘수였다.

테네시에서 자그마한 사업체를 운영하는 소상인 캐럴 윌리엄스는 "처음에 트럼프가 출마를 선언했을 때는 그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루이지애나에 살고 있는 데린 한은 "기존 정치인과는 달리 상식이 통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된다"며 트럼프를 지지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뉴욕에 거주하는 제프 깁스도 "트럼프가 대선 출마를 선언했을 때 일종의 언론 플레이로 생각했지만 TV 토론을 보면서 미국을 사랑하는 트럼프의 애국심과 시원시원한 그의 솔직함에 반했다"고 전했다.

대부분의 트럼프 지지자들이 그를 옹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치적 기득권층에 대한 실망감이다. 월가 시위에 참가했던 한 20대 남성은 "트럼프의 공약에 문제점이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지난 수년간 워싱턴에서 벌여온 정치인들의 수치스러운 행동보다는 낫다"고 밝혔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의 일부 관계자들은 트럼프가 클린턴과 본선에서 맞붙을 경우 클린턴이 불리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상당수 유권자가 클린턴을 '기존 정치세력'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기득권층의 지지를 받고 있는 클린턴은 말로는 중산층을 위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분노의 중산층'이 요구하는 실질적 공약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클린턴이 월가와 할리우드를 비롯, 실리콘밸리 등으로부터 엄청난 선거자금 지원을 받고 있는 것도 중산층이 등을 돌리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트럼프도 이를 의식한 듯 사회기반투자 확대, 세금절감을 위한 합병 반대, 월가의 세금우대 반대 등 중산층을 겨냥한 '클린턴 공격'에 적극 나서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럼프의 일부 공약이 민주당의 클린턴보다 더 민주당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NYP병원의 정신과 부교수인 게일 슐츠는 "트럼프는 이 말을 했다가 다시 완전히 다른 말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지지자들은 트럼프가 진정성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지자들은 분노 때문에 트럼프가 진짜로 진정성이 있다고, 그가 진정으로 분노하고 있다고 느낀다"고 분석했다.

jjung72@fnnews.com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