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나는 대한민국 OOO입니다(37)] "스승은 무슨.. 그저 '진학도우미'일 뿐이죠"

김은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5.23 18:08

수정 2016.05.23 22:28

선생님
한 반에 학생 30명 있으면 시어머니 60여명 있는 꼴
학생들과 함께 크는 교사.. 철밥통이란 편견 아쉬워
선생님이 오늘 당장의 일을 내일로 미루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직업일지도 모르죠. 그러나 시간을 나태하게 보낸다면 아이들의 10년 후, 20년 후 미래에 가장 큰 잘못을 한 사람이 선생님 아닐까요.

-5년차 초등학교 교사 엄모씨-

'매 맞는 교사' 뉴스를 접할 때마다 씁쓸해요. 25년째 교직 생활을 하면서 교권이 추락하는 현실을 맞닥뜨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그래도 대부분이 그렇다는 건 일반화의 오류예요. 많은 아이들은 여전히 선생님을 좋아하고 존경합니다.

-25년차 고등학교 교사 김모씨-

[나는 대한민국 OOO입니다(37)] "스승은 무슨.. 그저 '진학도우미'일 뿐이죠"

선생님의 교권이 갈수록 위협받고 있다. '선생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은 진부한 옛 문구쯤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많다. 아이들이 진정한 사회구성원으로서 성장하기 위한 '인생의 길잡이'보다는 오로지 대학 진학의 성과만으로 선생님의 자격과 위상을 평가받는 일도 많다. 이렇다보니 인성교육보다는 취업을 위한 '취업 도우미' 역할이 강조되곤 하는 게 현실이다.

이따금 언론 보도를 보면 학생들의 폭언과 욕설로 마음에 멍이 드는 일도, 학부모의 도 넘는 치맛바람에 모욕감을 느끼는 일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라서 행복하고, 자랑스럽다는 이 시대 '진짜' 교사들의 이야기는 아직도 우리 미래에 희망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

■철밥통? "교단 서보면 알 것"

초등학교 교사인 김모씨(50)는 23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선생님' 역할과 관련,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주입하기보다는 기본적 정보를 주고 아이들이 그걸 바탕으로 자기만의 생각을 펼쳐나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해주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아이들의 인성과 사회성을 길러주고 인간 관계의 시작을 잡아주는 '길잡이'라는 얘기다. 그래서일까. 수십년째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김씨는 "선생님이라는 직업의 무게가 참 무겁다"고 했다.

선생님은 흔히 '안정적이고 무난한 직업'이라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2년차 고등학교 교사인 조모씨는 "학교 현장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선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라고 역설했다. 보수나 근무 시간, 정년 등 세간의 잣대로만 교사를 평가한다면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설명이다.

조씨는 "한 명의 교사가 상호 작용하는 학생 수는 보통 200명을 넘는다. 이들의 개인 사정, 교우관계 등을 고려해 전체를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체력과 감정이 소모되기 마련"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사람의, 그것도 아이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직업인 만큼 교직에 필요한 적성과 능력을 갖추지 않고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5년차 초등학교 교사인 엄모씨 역시 "단 한 시간만이라도 교단에 서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 없을 것"이라며 "한 가정에서 한 아이를 키우는 것도 쉽지 않은데 각양각색의 아이 수십명을 키운다고 생각해보라"고 토로했다.

그는 "교실에는 30명의 아이가 있고 그 뒤에는 아이 한 명당 2명의 부모가 있다"며 "각 가정에서 120개의 눈을 가진 시어머니(?)가 지켜보고 있다고 설명하면 그 무게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매 맞는 교사, 남일 같지 않아"

이들은 '매 맞는 교사'에 대한 뉴스를 접할 때마다 마음이 착잡해진다고 입을 모았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교권침해 사례는 총 3458건에 달한다. 하루에 무려 9회를 넘는 셈이다. 그러나 대다수 교사가 웬만하면 학생과의 트러블을 속으로 삭인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사례는 더 많을 것으로 분석됐다.

중학교에서 체육을 가르치는 A씨는 "장난으로 툭 건드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때리면 안 되는 거 아니냐'며 말대답하는 학생들을 보면 묘한 기분이 든다"며 "한 번은 잘못을 저지른 학생을 훈계했는데 경찰에 신고하겠다며 대들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새내기 고등학교 교사인 양모씨도 "수업시간에 잠자는 건 기본이고 어지간한 버릇없는 행동은 눈감아야 하는 게 일상"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학부모에 의한 교권 침해가 더욱 심각하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엄씨는 "단체생활을 하다보면 싸우기도 한다. 다투고 화해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게 학교"라며 "그 과정에서 학교와 교사를 믿지 못하는 학부모가 끼어들면 쉽게 해결될 일도 어렵게 꼬인다"고 말했다. 반을 바꿔달라는 둥, 중징계를 내려달라는 둥 막무가내식 요구를 하고 들어주지 않으면 교육청에 민원을 넣겠다는 협박도 한단다.

25년차 고등학교 교사인 김모씨는 최근 수행평가 점수에 이의를 제기하는 학부모 때문에 곤혹을 겪었다. 그는 "교권을 침해하는 아이는 일부지만 그런 학부모는 부지기수"라며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착하는 학부모가 되레 아이를 엇나가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래도 아이들을 가르칠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게 선생님들의 하나같은 반응이다.
교직 생활에 만족하느냐는 질문에 모두 "만족한다"고 했다. 아이들과의 매일매일이 전쟁통 같지만 "사랑한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에 금세 마음이 풀린다고 입을 모았다.


조씨는 "아이들이 스스로 껍질을 부수고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함께 호흡을 맞춰 도와주는 것이 선생님 역할이지만 나 역시도 학생들과 함께 배움을 즐기면서 학생과 더불어 성장하고 있다"며 "제자들의 '고맙다'는 말 한마디에 감동을 느끼고 더 좋은 교사가 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고 전했다.

ehkim@fnnews.com 김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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