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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나눔' 장기기증 활성화 정책적 지원 필요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6.13 19:59

수정 2016.06.13 22:34

작년 뇌사자 501명 기증으로 1816건 이식 성사
대기자 2만7000명 비해 연간 500명 기증 '태부족'
이식비용 건보 적용, 추모공원 설립 등 대책 절실
'생명나눔' 장기기증 활성화 정책적 지원 필요

'생명나눔' 장기기증 활성화 정책적 지원 필요

세계적으로 '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고 있는 가운데 뇌사자의 생명나눔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뇌사자의 대표적인 생명나눔은 장기기증이다.

정상적일 때 미리 장기기증을 서약한 뒤 여러 이유로 뇌사에 이르렀을 때 자신의 장기를 필요로 하는 환자에게 이식함으로써 환자에게 새로운 삶을 부여하는 것이다.

뇌사자가 기증할 수 있는 장기는 심장, 폐, 간, 신장, 췌장, 췌도, 소장, 각막 등이다. 지난 2014년 기준으로 국내에서 446명의 뇌사자가 기증한 장기로 신장 806건, 간장 404건, 췌장 55건, 심장 118건, 폐 55건, 소장 5건, 안구 373건 등 1816건의 수술이 진행돼 환자들에게 새로운 삶을 제공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뇌사자 장기기증에 인색하다.
전문가들은 뇌사자 장기기증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장기기증에 대한 대국민 인식전환을 위한 정책적 지원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장기이식 100만명당 0.02명 그쳐

13일 질병관리본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장기이식 대기자는 지난 3월 말 현재 2만7904명에 달한다. 이에 비해 장기를 이식하는 뇌사자는 연간 500명 수준에 불과하다. 뇌사자 장기이식은 2010년 268명, 2011년 368명, 2012년 409명, 2013년 416명, 2014년 446명에 이어 지난해에는 501명으로 집계됐다.

이어 올해들어서도 5월 말 현재 226명의 뇌사자가 장기를 이식했다. 해마다 조금씩 늘어나기는 하지만 대기자 수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이에 비해 주요 선진국들은 뇌사자 장기기증이 활발하다. 지난 2013년 기준으로 인구 100만명당 장기기증 뇌사자수는 네덜란드가 8.97명, 영국 8.54명, 벨기에 6.3명, 호주 3.7명, 스페인 3.4명, 프랑스 1.9명으로 우리나라(0.02명)에 비해 훨씬 많다.

■뇌사자 vs. 식물인간 인식부족이 원인

의료전문가들은 이처럼 우리나라가 뇌사자 장기이식이 저조한 것은 근본적으로 신체 훼손을 금지하는 뿌리깊은 국민정서와 함께 뇌사자와 식물인간에 대한 인식부족이 주요한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환자보호자들이 회복 불능상태인 뇌사자를 언젠가는 회복이 가능할 수 있는 식물인간으로 생각해 장기 이식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뇌사는 의학적으로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판정을 내린다. 뇌사자는 뇌간을 포함한 뇌 전체가 손상된 상태로 몸의 움직임이 없을 뿐 더러 자발적 호흡이 불가능하다. 더불어 인공호흡기를 달아도 며칠 이내에 사망에 이른다.

이에 비해 식물인간은 대뇌의 일부만 손상된 경우다. 이 때문에 기억, 사고 등을 할 수 없지만 약간의 움직임도 있고 자발적인 호흡도 가능하다.

이 때문에 수개월에서 수년까지 생존하며 때로는 기적적으로 회복되기도 한다.

김순일 대한이식학회 정책위원장(세브란스병원 장기이식센터)은 "뇌사자는 뇌사판정 후 보통 48시간에서 72시간 이내에 사망한다"며 "식물인간과는 큰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안규리 대한이식학회 이사장(서울대병원 신장내과)은 "뇌사자는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지만 체온이 유지되기 때문에 보호자들이 장기기증에 동의하는데 감정적인 고민이 있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뇌사자에 대한 예우를 해주고 학생 때부터 교육을 진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생명나눔 분위기 조성 시급"

특히 뇌사자의 장기 이식으로 수술할 경우 환자의 완치율이 높아 환자의 삶의 질에도 크게 기여한다.

김순일 위원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신장이식 성공률이 세계 1위이고 이식 후 5년 생존율이 90%를 넘는다"면서 "신장손상 환자의 경우 투석 때문에 1년에 3000만원 가량의 의료비가 들고 가족 한 명이 환자를 돌봐야 하지만 이식 후에는 1000만원 이하로 의료비가 줄어들고 혼자서도 생활이 가능해 삶의 질이 크게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뇌사자 장기이식에 대한 국민인식 개선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안규리 이사장은 "웰다잉과 생명나눔 문화 정착을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장기를 기증한 뇌사자를 위한 추모공원 설립도 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안 이사장은 또 "외국처럼 학교 교육과정에 생명나눔의 중요성 등을 포함시켜 어릴때부터 생명나눔 의식을 심어줄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우리나라는 장기기증자에게 장례비, 의료비, 본인 부담 의료비 등 금전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안 이사장은 "현행 법률상 장기기증자에게 지급되는 위로금, 병원비 대신 장제비 명목으로 통합 지급해야 한다"며 "특히 장기기증때 발생하는 병원비를 이식 받는 환자에게 부담하는 데 이를 건강보험으로 전환하는 등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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