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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호감 레시피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6.14 17:14

수정 2016.06.14 17:14

[여의나루] 호감 레시피

지난 5월 베트남을 방문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소탈하고 서민적인 모습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방문 첫날 공식적인 일정을 마친 대통령이 하노이의 조그만 쌀국수집에서 TV프로그램 진행자인 셰프와 단 둘이 식사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수행원이나 경호원도 없었고(물론 경호를 안했을 리 없지만 적어도 화면상으로는), 또 그때 그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현지인들과도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는 등 서민적이고 소탈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저녁식사 값이 둘이 합쳐 겨우 우리 돈 7000원 정도였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주요 언론에서는 이 장면을 한때 격렬한 전쟁을 한 미.베트남 간 냉전적 적대감의 마지막 잔재를 무너뜨린 역사적 장면으로 묘사하면서, 이른바 '쌀국수 외교'를 통해 베트남 국민의 미국에 대한 반감을 없애고 오히려 연대감을 불러일으킨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2014년 8월 우리나라를 방문한 프란체스코 교황이 우리에게 보여준 가난한 사람, 상처 받은 사람, 약한 사람들에 대한 인자스러움과 따뜻한 마음을 우리는 잊을 수 없다.
타임지의 낸시 깁슨 편집장은 "그는 교황의 자리를 궁전에서 거리로 옮겼고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를 가난한 이들과 직면하게 했으며 정의와 자비의 균형을 맞췄다"라고 높게 평가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절친이자 핵심측근으로 알려진 주한 미국대사인 마크 리퍼트 대사의 거침없는 현지화 행보는 역대 어느 대사도 보여주지 못한 면모이다. 특히 그의 야구장에서의 모습은 보는 이들로부터 칭찬일색이라고 한다. 짧은 시간 동안 익힌 유창한(?) 한국말은 물론이거니와 일반석의 관람객과 똑같이 치맥을 즐기는 그를 보고 어찌 친근감이 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난해 어느 행사장에서의 피습으로 인한 트라우마도 있을 법한데 말이다.

물론 이런 행동들을 나쁘게 보자면 잘 각본 된 쇼맨십이라고 폄하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엔 누구라도 쉽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의도적으로 한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그래서 호감을 갖지 않을 수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정치인들이 구사하는 홍보전략 중에 프랫폴(Pratfall)효과라는 게 있다고 한다. 자꾸 넘어지는 프랫이라는 사람에게서 가져온 용어라고 하는데, 사람들은 완벽함보다는 오히려 실수를 저지르거나 인간미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에게 훨씬 호감을 갖게 되고 말을 붙이거나 공감하기 쉽다고 한다. 가령 프레젠테이션 석상에서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모습이 아니라 약간 세련되지 않은 어설픈 모습을 보인다면 참석자들도 긴장이 풀리고 마음도 편안하게 되어 자기도 모르게 공감하게 된다고 한다. 아주 오래된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일선 점포에서 너무 세련되고 행동이 매끄러운 직원보다는 유행에 좀 뒤처진 듯하고 조금 어설퍼 보이는 직원에게서 고객의 신뢰도가 높다는 것 또한 프랫폴효과라 할 수 있다.
결국 인간은 본능적으로 나와 크게 다르지 않거나 조금은 못한 그리고 약점을 가진 사람에게 더 많은 호감과 공감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 우리는 어떠한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특별해지려고 온 힘을 쏟고, 또는 좀 더 우월적 지위를 갖고자 아둥바둥하지 않는가. 물론 경쟁사회이다 보니 남보다 앞서려 하는 것, 그에 따라오는 특권을 얻겠다는 생각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오바마, 프란체스코, 리퍼트 그들이 자기 분야에서 누구보다 앞선 사람들이지만 다른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사는 것은 그들이 세상을 나 혼자 사는 게 아닌 더불어 사는 것이라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특별함에서 주는 불편함보다 소탈함에서 얻는 친근감이 바로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것이라고 우리 모두 느꼈으면 한다.

정의동 전 예탁결제원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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