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중소기업

[나는 대한민국 OOO입니다(41)] "폐업과 함께 폐인 전락.. 실패의 경험 인정하는 사회 분위기 절실"

이보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6.20 18:06

수정 2016.06.21 12:37

재기 사업가원청 대기업 철수결정에 하루아침에 사업 망해남은건 빚 그리고 이혼.. 창업만큼 폐업도 중요재창업 컨트롤타워 나와야.. 도전적 기업가 정신 부활
#. 눈앞이 깜깜했습니다. 원청업체였던 대기업 계열사가 사업 자체를 접는다는 얘기를 지인에게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거래하면서 사업 철수는 단 한번도 들은 적 없었거든요. 소식을 듣고 원청회사로 달려갔지만 "1년 전 내부 결정한 사항"이라는 대답만 돌아오더군요.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습니다. 저는 다니던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휴대폰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수익을 내려면 투자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초기자금으로 3억원이란 거금을 쏟아부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원청업체의 밀어내기식 요구가 강해지면서 사업에 무리가 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원청업체의 사업 철수는 그야말로 사형선고나 다름 없었죠. 다른 판로는 없었습니다. 원청업체와 계약할 때 다른 곳에 제품을 납품하지 못하게 했거든요. 결국 폐업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업 실패로 남은 것은 5억원의 빚, 그리고 가족.거래처.직원들에게 나는 나쁜 놈이 되었더군요. 한마디로 '루저'였습니다.

[나는 대한민국 OOO입니다(41)] "폐업과 함께 폐인 전락.. 실패의 경험 인정하는 사회 분위기 절실"

■"창업만큼 폐업에도 준비가 필요했는데…"

가장 힘든 건 폐업 이후였습니다. 폐업 당시 직원급여 미지급으로 노동청에 불려다녔고, 가족과는 떨어져 생활하게 됐습니다. 아내와는 이혼했고요.

폐업을 결정하며 누군가와 상의를 하고 조언을 구하고 싶었지만 제가 '돈을 빌려달라'고 할까봐 가족과 지인들은 제 전화는 피하더군요. 그렇다고 "왜 그러냐"고 할 수도 없었죠. 한마디로 '기피인물'이 된거죠.

지나고 보니 '당시 컨설팅이라도 받았다면 폐업이든 사업전환이든 빠르게 결정해 재창업을 가로막는 세금체납 등은 최대한 피했을텐데'하는 후회가 듭니다.

당시 중소기업청이나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컨설팅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주변에서 궁지에 몰리니 '어떻게든 살려보자'는 생각에 막판에 자금을 올인하다 폐업하는 이를 봤을 때 정말 안타깝더군요. 하지만 사실 그런 일이 닥치면 별다른 방안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창업은 시작도 중요하지만,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대책'도 반드시 세워놓아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군요.

■"재창업 컨트롤타워 나와야"

지인 소개로 정보기술(IT) 업체에 취업한 후 돈을 벌어 빚을 갚는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재기의 길이 보이더군요. 파산 제도로 면책을 받으면서 '사업을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했죠.

그렇게 정보통신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중소기업청에서 재창업자금 1억원도 지원받았죠. 한고비 넘었다 싶더니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세금체납이었습니다. 은행에 넣어둔 직원월급이나 급하게 쓰려던 자금이 세금으로 빠져나가면 아찔했습니다. 연체료인 가산세까지 눈덩이처럼 불어나다 보니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저만 힘든 게 아니더군요. 중기청에서 재기 자금을 지원받은 A 사장에게 세무서는 세금체납을 이유로 '사업자등록증'을 내주지 않았답니다. A사장은 세무서를 여러 차례 드나들다 결국 중기청 사무관이 직접 세무서를 찾아 설득한 끝에 사업자등록증을 받았다고 합니다. 세금체납은 분명 잘못한 일입니다. 갚아야 합니다. 그러나 "돈을 벌어야 밀린 세금을 낼텐데"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중기청은 재기 자금을 빌려주고, 그 돈이 세금으로 빠져나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된 셈이죠. 이를 겪고 나니 재도전 창업자를 위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중기청 뿐만 아니라 다른 경제관련 부처가 재기 사업자를 이해하고 관련 정책을 만들어야 성실한 재도전 기업가의 생존율을 높이고, 나아가 신규 시장 발굴과 고용 창출까지 '선순환'이 이룰 수 있지 않을까요. 이렇게 해야 재도전 정책이 단순히 실패한 기업인의 재기를 돕는 프로그램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재기는 소중한 경험… 인정해줬으면

정부가 재도전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한번 실패하면 재기하기 쉽지 않습니다. 실패 후 재도전 비율이 전체 기업인 중 7%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줍니다.

그러나 지난해 중기청과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재창업 지원을 받은 재도전 기업의 3년 후 생존율은 80%고 2010년 창업한 기업의 3년차 생존율은 38.2%로 재창업이 신규 창업보다 성공 확률도 더 높은 편이었습니다.최근 청년 창업을 독려하면서 관련 지원금도 늘었습니다. 덕분에 청년 창업은 증가하고 있지만 성공할 확률은 떨어지는게 현실입니다.통계청에 따르면 2013년 기준 30대 미만 대표자가 있는 기업의 5년 생존율은 16.6%에 그쳤고 30대 대표자가 있는 기업의 5년 생존율도 26.9%에 머물렀습니다.
첫 창업으로 실패를 경험하더라도 다시 도전하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것이 창업 활성화를 위해 쏟아부은 정책 자금의 의미가 아닐까요. 재창업자가 재기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다면 창업을 통한 시장 개척, 고용 창출 등 선순환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실패의 경험으로 창업에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조언을 해주고 싶습니다.
경험은 돈으로도 살 수 없으니까요. 도전하는 기업가정신을 인정해주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spring@fnnews.com 이보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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