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제로금리 시대 '슬픈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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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나 가능할 줄 알았던 '제로(0) 금리' 시대가 우리 앞에도 성큼 다가왔다. 1.25%.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 9일 결정한 기준금리 수준이다. 아직 기준금리는 1%대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예금자들의 체감 금리 수준은 이미 0%대다. 6월 30일 전국은행연합회가 공시한 시중은행 금리는 연간 1.10~1.20% 범위 내에 몰려있다. 1년 기준 KB국민은행의 국민수퍼정기예금 금리는 1.10%, IBK기업은행의 신서민섬김통장 금리는 1.20% 등 대다수 은행 예금금리가 이 수준이다. 여기에 이자소득세 15.4%를 빼면 예금자가 받는 연간 금리는 1%를 밑돌게 된다. 1% 안팎의 물가상승률까지 감안하면 은행에 돈을 예치하면 오히려 손해인 셈이다.

게다가 연내 기준금리마저 0%대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한은 금통위가 금리를 0.25%포인트씩 두 차례 추가 인하하면 기준금리는 0.75%가 된다. 요즘 분위기라면 한 차례 인하는 수순이고, 두 차례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올해 국내 경제성장률(GDP) 전망치가 잇따라 하향 조정되고 있고,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결정 등으로 세계경제도 불안하기 때문이다. 기준금리가 1% 이하로 떨어지면 이자를 목적으로 돈을 은행에 예치하는 건 사실상 무의미해진다. 예금자에게는 재앙이 되고, 대출받은 사람은 거의 부담 없이 돈을 빌려다 쓸 수 있는 시절이 온 것이다.

이렇게 사실상의 제로 금리로 예금자가 이자를 덜 받는 대신 싼값에 돈을 끌어쓰는 혜택은 누가 누리게 되는 걸까. 물론 돈이 필요한 대출자다. 크게는 기업이고, 다음은 주택 등을 구입하기 위해 큰돈이 필요한 개인이다. 기존에 은행빚을 낸 사람들은 이자가 줄어서 좋고, 추가로 은행빚을 내는 데도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 돈을 빌려 부동산을 사고, 값이 오르면 시세차익까지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혜택을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금리가 떨어졌어도 돈을 빌려쓸 능력조차 안 되는 서민에게는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초저금리의 혜택은 고스란히 돈을 빌릴 수 있는 능력자들의 몫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세태에서는 서민들의 소외감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대부업 대출 수요가 늘고 있다는 사실에서 이런 문제의 단면을 읽을 수 있다. 6월 29일 발표된 '2015년 하반기 대부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작년 12월 말 기준 대부업체 대출잔액은 13조2452억원으로 사상 처음 13조원을 넘어섰다. 작년 6월 말 대비로는 9051억원(7.3%) 늘어 6개월 만에 1조원 가깝게 증가했다. 초저금리에도 서민들은 여전히 고금리 상황에서 못 벗어나면서 계층 간 양극화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우리 경제의 체력이 약화되는 징조라는 점에서도 안타깝다. 금리가 떨어지는 건 그만큼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이 약화됐다고 보면 된다. 특히 일인당 국민소득이 4만달러를 넘나드는 선진국과 달리 3만달러 문턱도 못 넘은 한국의 금리가 벌써 제로 수준이라는 것은 상당히 슬픈 일이다. 지난 1999년 세계 최초로 제로 금리를 시작한 일본의 당시 일인당 국민소득은 3만5000달러를 넘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제로 금리에 돌입한 미국은 당시 일인당 국민소득이 5만달러에 육박했다. 아직은 내공을 더 쌓아 자생력을 키워야 하는 한국 경제가 선진국 문턱에서 고꾸라지게 생긴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의 선진국 진입은 머나먼 일이 된다.
정부가 초저금리 시대를 맞아 서둘러 대비해야 하는 일이 바로 이런 것이다. 먼저 서민금융을 크게 확충해 서민의 소외된 마음을 돌봐야 한다. 그리고 떨어진 성장동력을 키우는 데 국가의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yongmin@fnnews.com 김용민 금융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