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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자율주행차 표준 전쟁

이재훈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7.11 17:00

수정 2016.07.11 17:00

역사상 가장 유명한 기술 표준 전쟁은 1970년대 중반 일본 소니와 JVC가 벌인 비디오 테이프 경쟁이다. 가정용 홈비디오 시대가 태동하던 시기에 소니의 베타맥스와 JVC의 VHS방식이 등장했다. 베타맥스는 크기가 작으면서도 화질이 우수했다. VHS는 베타맥스보다 녹화시간이 훨씬 길다는 장점뿐이었다. 하지만 10년 이상 계속된 전쟁에서 기술력이 뛰어난 소니가 패했다.

소니는 이익을 독점하기 위해 폐쇄적인 기술정책을 고수한 반면 JVC는 기술공유를 통해 파나소닉 등을 우군으로 끌어들였다.
특히 지나치게 폭력적이거나 외설적인 콘텐츠를 제약하는 소니의 품질정책에 콘텐츠 제작사들이 등을 돌린 것이 결정적이었다. 기술 수준이 아니라 마케팅과 전략적 제휴가 전쟁의 성패를 가른다는 사실을 비디오 테이프 사례가 보여준다.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 표준 전쟁은 숙명이다. 승자는 시장을 독식하고 패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레코드판에서 콜럼비아 레코드가 제시한 30㎝(12인치) 크기 LP와 RCA 빅터의 17.5㎝(7인치) EP 간 경쟁이 20년간 이어지다가 LP방식이 승리했다. 2000년대 중반 차세대 DVD 시장을 놓고 소니의 블루레이와 도시바의 HD(고화질) DVD가 한판 붙었다. 이번에는 소니가 할리우드 영화배급사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어 손쉽게 승리했다. 삼성전자와 애플 간의 지루한 특허소송도 결국은 표준 전쟁이다.

한국과 일본, 독일 등 유럽국가가 손잡고 자율주행 자동차에 공통으로 적용할 운행기준을 마련한다고 한다. 미국 테슬라의 자율주행차가 인명사고를 내는 등 운행을 규제할 기준 마련이 시급해진 데 따른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이들 나라가 참여한 유엔 전문가회의는 자율주행차가 추월할 수 있는 길을 고속도로로 제한하고 자율주행 중 발생하는 사고의 모든 책임은 운전자가 지는 내용 등을 담은 기준을 입안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미국은 이르면 이달 안에 독자적인 기준을 발표할 예정이다. 미국과 여타 국가 연합 간의 시장주도권 쟁탈전이 불꽃 튈 전망이다.

자율주행차 기술은 미국이 4~5년 앞서가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렇다해도 여타 국가에서 엄격한 안전.주행 기준을 마련하면 그것이 미국 업체에는 시장 진입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자율주행차는 일반적인 ICT제품과 달리 주행 중 사고 등 안전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
이에 대한 통일된 기준이 없을 경우 큰 혼란도 예상된다. 자율주행차 표준은 모두 함께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닐까.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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