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없느니만 못한 서별관회의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7.11 17:00

수정 2016.07.11 17:00

되레 한계기업 정리의 장애물
외환銀을 사모펀드에 매각한 변양호의 배짱 본받았으면
[곽인찬 칼럼] 없느니만 못한 서별관회의

대우조선해양 처리를 놓고 '변양호 신드롬' 이야기가 또 나온다. 공무원들을 주눅들게 해선 안 된다는 뜻에서다. 연장선상에서 청와대 서별관회의를 옹호하는 말도 들린다. 맞다. 사후 처벌이 두려워 공무원들이 눈치만 살펴선 안 된다. 기업을 죽이고 살리는 구조조정은 어차피 누군가 피를 묻혀야 한다.
나중에 검찰이 족치면 감히 누가 칼을 들겠는가.

변양호는 호된 고초를 겪었다. 검찰은 2006년부터 2010년까지 4년 넘게 그를 괴롭혔다. 두 건을 동시다발로 물고 늘어졌다. 현대차 뇌물 사건은 곁다리이고 본건은 외환은행 매각이다. 변양호는 142번 법정에 섰고, 11번 선고를 받았다. 결론은 무죄, 또 무죄였다. 그가 2013년에 펴낸 책 '변양호 신드롬'에서 밝힌 내용이다.

변양호는 제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사실 외환은행을 사모펀드에 넘기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마냥 붙잡아두면 생존이 위태로웠다. 2003년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금융정책국장이던 변양호는 외환은행을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에 넘기는 데 동의했다. 당시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외환은행도 같은 생각이었다. 더 좋은 임자를 고르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 서둘러 주인을 찾아주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다.

수익을 좇는 론스타는 사모펀드 역할에 충실했다. 주가가 오르자 3년 만에 외환은행을 시장에 매물로 내놨다. 동시에 먹튀 논란이 일었다. 시민단체와 국회가 들고 일어났다. 이때부터 변양호의 시련이 시작됐다. 냉정히 보면 변양호의 시련은 성공한 인수합병(M&A)에 대한 응징이다. 반외자 정서는 여론을 자극했고, 검찰은 여론에 편승했다. 그 결과는 실로 허무하다. 온갖 책임을 일개 국장이 다 뒤집어썼으니 말이다. 이때부터 중뿔나게 나서지 말자는 '변양호 신드롬'이 공직사회의 철칙이 됐다.

자, 이제 초점을 임종룡 금융위원장에게 맞춰보자. 현재 그는 구조조정의 사실상 사령탑이다. 유일호 부총리가 구조조정을 총괄하는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지만 존재감은 없다. 임 위원장은 지난 4일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중병에 걸린 기업을 살려내지 못했다고 책임을 묻는다면 아무도 구조조정을 하지 않을 것"이라며 "(작년 10월 서별관회의) 당시 대우조선 상황은 하루하루를 넘기기가 위중했다"고 말했다.

임 위원장의 말에 대체로 동의한다. 그날 서별관회의에 참석한 이들은 이미 곤욕을 치르고 있다. 야당은 청문회를 열자고 난리다. 참여연대는 임 위원장을 비롯해 홍기택 전 KDB산업은행 회장, 최경환 전 부총리, 안종범 전 경제수석,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을 배임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변양호 신드롬'은 관직의 높낮이를 가리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흔들면 누구라도 구조조정의 칼을 뽑기 힘들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해둘 게 있다. 변양호와 임종룡 사이엔 큰 차이가 있다. 변양호는 부실 은행에 세금을 투입하느니 차라리 외국계 사모펀드에 파는 길을 택했다. 먹튀 논란에도 불구하고 외환은행은 살아났고, 하나은행과 합쳐졌다. 결과적으로 사모펀드를 택한 변양호의 선택은 옳았다.

대우조선은 어떤가. 적자 수렁에 분식회계까지 겹쳤다. 그런데도 서별관회의에선 4조원 넘는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글로벌 조선업황이 언제 살아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외국계 사모펀드를 택한 변양호의 배짱에 비하면 비겁한 결정이다. 버거운 짐을 국민들한테 떠넘겼다.

서별관회의 존폐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거기서 어떤 결정이 내려지느냐다. 올바른 결정이 나오면 서별관이면 어떻고 동별관이면 어떤가. 현실은 거꾸로다. 대우조선은 중환자실에서 연명하고 있다. '서별관병원'의 의사들은 링거 투여밖에 모른다. 왜 대우조선을 토종이든 외국계든 사모펀드에 팔겠다는 생각은 못하나. 사모펀드는 부실기업 구조조정이 주특기다.
사모펀드에 맡기면 벌써 메스를 댔을 거다. 시쳇말로 하면 서별관회의 멤버들은 '뭐시 중헌지' 도무지 모르는 것 같다.
그러니까 차라리 없애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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