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석학에 듣는다]

영국이 마주 한 진실의 순간

대니얼 그로스 유럽정책연구원장


영국이 유럽연합(EU)을 떠나기로(브렉시트) 결정하면서 영국의 유럽 내 역할은 어정쩡한 연옥에 빠진 상태가 됐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영국과 EU 간 간극은 커지고, 미래는 더 불확실해진다.

이제 영국은 영국의 국익이 가장 잘 반영되도록 탈퇴협상에 나서야 한다.

EU 내부 시장은 영국에는 늘 최우선순위였던 터라 가장 광범위하게 논의되고, 정당들 간에도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 방안은 이른바 '노르웨이 모델'이다. 유럽경제구역(EEA) 회원국이 되는 것이다.

EEA 협약에 따라 노르웨이는 (아일랜드와 함께) EU 단일시장에 어떤 제약도 없이 접근할 수 있다. 금융서비스도 포함된다. 그러나 EEA 회원국은 재화와 서비스, 자본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자유로운 이동 역시 온전히 허용해야 한다.

영국에 노르웨이 방식이 EU 회원국보다 더 나은 선택일까.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영국이 EU 대신 EEA에 가입했다고 치자.

탈퇴파의 논의는 실제로 세 가지에 집중돼 있었다. 영국의 EU 예산 분담, 노동자의 자유로운 이동, 그리고 주권이다.

탈퇴파는 영국이 회원국으로 EU에 예산 분담금을 내느니 이 돈을 국내에서 지출하는 게 낫다고 주장했다. 같은 주장은 EEA에도 적용할 수 있다. 사실 영국의 EU 분담금은 경제규모에 비춰 노르웨이가 EEA 회원국으로 내는 분담금보다 더 적다.

틸퇴파는 또 노동자의 자유로운 이동이 테러 위험을 높이고, 영국 노동자들의 실업도 높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EU 내 노동 이동의 자유 조항은 노르웨이와 모든 EEA 회원국들에도 적용된다. 이동의 자유가 EU 탈퇴의 주된 이유였다고 보면 노르웨이 모델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탈퇴파의 세 번째 핵심 주장은 영국 경제에 관한 규정과 규제 '통제권 되찾기'이다. 이는 EEA 회원국에 훨씬 더 불리하다. EEA 회원국으로서 영국은 여전히 브뤼셀에서 정한 규정과 규제들을 따라야 하지만 EU 회원국일 때에 비해 논의 과정에서는 훨씬 발언권이 작아진다. 사실 EU 회원국으로서 영국은 영국 경제에 가장 중요한 산업인 금융서비스에 관해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통제권 되찾기'는 또 룩셈부르크의 EU 사법재판소를 겨냥한 것이기도 하다. EU 사법재판소 판결은 협정에 따라 회원국 법원 판결에 우선한다. 그러나 EEA 또한 자체 재판소가 있고, 회원국들은 그 판결에 구속받는다.

간단히 말해 EEA 회원국은 EU 회원국보다 더 무거운 부담을 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선택지를 받아들이는 일부 국가가 있다. 노르웨이인들은 줄곧 EEA 잔류를 선호하고 있다. 한 차례 이상 국민투표를 통해 압도적으로 EU 가입을 부결시켰다.

덴마크도 1992년 국민투표에서 유로존 가입을 거부했다. 현재 덴마크 크로네화는 유로와 아주 밀접히 연관돼 있어 덴마크 중앙은행의 독립이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유로에 가입하면 덴마크는 최소한 책상에 한 자리는 차지할 수 있다.

스위스는 국민투표에서 EEA 가입도 부결시켰다. 그러나 스위스가 원하는 수준으로 EU와 교역하기 위해 스위스 정부는 어쨌건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과 EU 예산 분담을 포함한 EEA 규정 대부분을 수용해야만 했다.

현실의 사례들이 보여주듯 어떤 나라도 유럽 프로젝트에서 과실만 취할 수는 없다. EU는 공통 규정을 제공하고, 아무리 작은 회원국이라도 발언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

이는 유럽 각국의 주권에 균형을 잡아준다. 각국은 형식적으로는 주권을 가지고 있지만 경제적으로 번영코자 한다면 공통의 기준들과 규정들을 받아들임으로써 유럽의 다국적 노동이 심화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물론 유럽은 단순한 자유무역지대 그 이상이다. 사회적.문화적 삶을 공유하는 허브이다.
이동의 자유가 경제적 관점을 넘어 왜 그렇게 호소력을 갖는지 그 이유다.

일부 군소국은 그동안 유럽의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자신들의 역할에 대해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영국처럼 글로벌 리더로서 그렇게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나라가 갑자기 뒤로 빼는 일은 놀라울 따름이다. 유럽 미래의 틀을 다듬는 역사적 역할을 내던짐으로써 정말 영국은 주변부에 남는 것을 수용키로 한 것인가.

정리=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