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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보험사 새 회계기준 유예가 바람직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7.25 16:53

수정 2016.07.25 16:53

2020년 시행 앞둔 보험사들 자본확충 근심에 전전긍긍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이 지난주 보험사에 적용할 새 회계기준을 예정대로 시행할 뜻을 내비쳤다. 진 원장은 22일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나라만 IFRS4 2단계 적용을 유예하거나 제외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IFRS는 국제회계기준의 약자로, IFRS4는 보험산업이 대상이다. IFRS4는 현재 1단계가 시행 중이며 이르면 오는 2020년부터 2단계가 적용된다. 유예 또는 제외가 어렵다는 진 원장의 말에 보험업계는 낙담한 표정이다.

원칙적으로 진 원장의 말은 옳다.
그는 우리만 새 기준을 유예하거나 제외하면 "국제회계기준 전면 도입국이라는 지위를 잃어 회계정보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다"고 우려했다. 잘 알려진 대로 한국의 회계 경쟁력은 주요국 가운데 꼴찌 수준이다. 최근 드러난 대우조선해양 사태가 좋은 예다. 이에 정부는 회계 선진화 로드맵의 일환으로 지난 2011년부터 IFRS를 단계적으로 도입했다. 이때도 기업들이 반발했지만 강행했다. 그런 정부가 보험사에만 예외를 인정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보험사들은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한다. IFRS는 공정가치를 최고의 원칙으로 내세운다. 공정가치란 장부가 대신 시가(時價)를 회계의 기준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보험사가 장차 가입자들에게 내줘야 할 돈, 곧 보험금은 부채로 잡힌다. 지금까진 계약 당시 금액, 곧 장부가가 기준이었다. 그러나 2단계가 적용되면 예컨대 10년 전에 계약한 고금리 보험상품을 시가로 재평가해야 한다.

시중금리가 높으면 시가 평가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처럼 저금리 기조 속에 역마진이 속출할 땐 시가 평가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역마진이 발생한 만큼 충당금을 쌓아야 하기 때문이다. 보험사들은 충당금을 쌓는 만큼 다시 자본을 늘려야 할 부담이 생긴다. 법이 규정한 지급여력(RBC)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RBC를 권고비율 150%에 맞추려면 14조원이 들 것이란 추산도 있다. 지금 같아선 과연 보험사들이 당국이 요구하는 RBC 기준을 충족할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다. 4년 뒤 시행을 앞둔 IFRS4 2단계는 손해보험사보다 생명보험사, 대형 보험사보다 중소형 보험사에 더 충격이다. 일부 중소형 생보사들로선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회계경쟁력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생존의 기로에 선 보험사들의 호소를 외면해선 안 된다. 해답은 적용 유예다. 사실 정부는 IFRS 도입을 지나치게 서둘렀다. 이는 회계 선진국인 미국과 일본이 아직 IFRS를 도입하지 않은 것과 대비된다. 유럽은 새 보험회계 기준인 솔벤시Ⅱ(신지급여력제도) 도입에 앞서 10년이 넘는 준비기간을 거쳤다.
금융당국은 보험사 새 회계기준 도입준비단을 2013년 가을에 가동했으나 활동은 부진하다. 회계 후진국인 한국이 의욕만 앞세워 선진국들을 따라잡으려다 가랑이가 찢어질 판이다.
진 원장은 국익까지 따져가며 좀 더 여유를 갖고 일을 추진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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