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악성 고소·고발, 언제까지 방치할건가

이두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7.28 16:49

수정 2016.07.28 17:27

[데스크 칼럼] 악성 고소·고발, 언제까지 방치할건가

최근 배우 이진욱씨(35)를 성폭행 혐의로 고소한 여성 사건에서처럼 우리 사회는 가히 고소.고발 공화국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기나 폭행 등 명백한 형사사건을 수사해달라는 데야 누가 이의를 제기하겠는가. 그러나 개인 간 돈거래 등 민사적인 사안을 형사문제화하고, 상대방에 대한 압박 수단으로 고소.고발을 남발함으로써 빚어지는 사회적 비용은 산출하기조차 어렵다. 더구나 수사기관이 증거 불충분 등으로 '혐의 없음' 처분한 경우 불복 수단까지 줄줄이 보장돼 있으니 한번 고소.고발사건에 휘말리면 족히 수년간은 정상적인 생활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이 과장만은 아니다.

대검찰청 집계 결과 지난해 접수된 고소.고발은 51만2679건, 인구 1만명당 한 해 평균 80건이다. 일본의 1.3건에 비해 무려 60배 이상 많다. 그러나 수사 결과 혐의가 입증돼 기소되는 비율은 30% 수준에 그치고 불기소율은 2014년 65%, 2015년 67%로 상승하는 추세다.
수사력 낭비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이야기다.

고소.고발을 당한 쪽 입장에서는 수사를 통해 혐의 없음 처분을 받았다고 끝이 아니다. 고소.고발인이 해당 사건에 대한 검사의 불기소 처분에 불만이 있을 경우 관할 고등검찰청에 재심을 요구(항고)할 수 있고, 이 요구마저 수용되지 않으면 검찰총장에게 재항고할 수도 있다.

특히 형사소송법은 검사의 기소독점주의와 기소편의주의를 견제하기 위한 장치로 재정신청제도를 뒀다. 항고를 거쳐(검찰항고전치주의) 검사의 불기소 처분이 타당한지 여부를 법원에서 직접 가려달라고 신청할 수 있는 것이다. 재정신청 기각결정에도 불복하면 '재판에 영향을 미친 헌법.법률.명령 또는 규칙의 위반이 있는 경우'라는 점을 들어 대법원에 재항고할 수 있는 길까지 터놨다.

대개의 고소.고발사건을 1차 조사하는 경찰 단계에 이어 검찰 조사, 고검 항고사건 처리, 대검 재항고사건 처리, 고법 재정신청사건 처리, 대법원 재항고사건 처리 등 최대 6단계의 절차가 마련돼 있는 것이다. 고소.고발인 입장에서는 우리 형사절차만큼 권리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장치도 없다고 생각함 직하다.

상대방은 어떨까. 검찰의 무혐의 처분 뒤에도 같은 내용으로 반복되는 고소.고발인의 불복절차에 일일이 대응하는 과정에서 시간적,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고스란히 감수해야 한다. 더러는 끝없는 불복절차가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편이나 온전히 상대방을 괴롭히기 위한 의도라도 최종 절차가 끝나기 전까지는 불안정한 신분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물론 재정신청제도의 남용을 막기 위해 기각결정이나 재정신청이 취소되면 절차에서 생긴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신청인에게 부담토록 할 수 있지만 얼마나 제 기능을 하는지는 의문이다.

이렇게 다단계 불복절차를 둔 것은 수사 결과를 불신하는 고소.고발인의 권리 보장 측면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로 인한 상대방의 장기간 고통, 실추된 명예 등 권리침해는 무시해도 좋다는 취지는 아닐 것이다. 또 수사기관과 형사절차를 악용하는 경우까지 무조건 순응토록 하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한 일이다.
따라서 '수사 신뢰성 제고'라는 막연한 개선책은 해법이 될 수 없다. 악성 고소.고발에는 무고죄와 위증죄를 엄히 묻고 무차별적인 불복절차 진행에 따른 책임 역시 지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발전적인 논의와 해결책을 기대한다.

doo@fnnews.com 이두영 사회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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