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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실적 대박' 정유업계, 웃지 못하는 이유

안승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7.31 16:37

수정 2016.07.31 16:39


[차장칼럼] '실적 대박' 정유업계, 웃지 못하는 이유

"잘나갈 때 조심하라는 말을 흔히 하는데 정유사들만큼 이 말이 잘 들어맞는 업종이 없는 것 같다. 영업이익이 많이 나면 반드시 기름 값 좀 내리라는 질타가 쏟아질 텐데, 이럴 때마다 곤혹스러운 게 사실이다." 한 정유사 관계자가 최근 2.4분기 실적발표 직후 만난 자리에서 토로한 내용이다. 국내 정유사들은 정제마진 악화 속에서도 2.4분기에 잇따라 '사상최고'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한 실적을 내면서 시장을 놀라게 했다.

시황침체가 지속되고 있지만 국내 정유사 4곳의 상반기 영업이익은 5조원에 육박했다. '대박'이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는 실적이다.


정유사들은 사실 이익이 나건 안 나건 소비자로부터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한다. 돈을 벌었다는 얘기가 나오면 휘발유.디젤 가격이 비싸다며 눈총을 받는다. 실적이 떨어지면 정제마진에 기대는 영업방식 때문이라며 '그럴 줄 알았다'는 식의 조소를 받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2.4분기 훌륭한 실적을 기록한 정유사들은 대놓고 좋아하지도 못한다. 사실 정유사들 얘기를 들어보면 억울한 점도 많다. 정유사들의 최근 실적이 좋은 것은 정유부문이 아닌 화학과 윤활기유 등 비정유부문의 시황이 좋기 때문이다. 화학부문과 윤활기유 등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지만 영업이익에는 지대한 공헌을 했다,

정유사들은 몇 년 전만 해도 영업손실을 기록할 정도로 위기상태였다. 돌파구를 찾기 위해 정제하고 남은 벙커C유에서 다시 휘발유와 디젤을 쮜어짜내는 '고도화설비'에 투자하고, 화학부문을 꾸준히 강화해 왔다. 다행히 최근 들어 화학업황 호조와 선제적 투자 효과가 맞물리면서 정유사들이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2012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석유제품들은 수출품목 1위였지만 2013년부터는 수출액이 5% 이상 줄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2014년에는 정유사들의 영업적자가 9000억원을 넘었으니 지금과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사실 정유사들이 단골로 욕을 먹는 주유소 기름값은 소비자가 흔히 생각하듯 국제유가와 정확히 연동되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석유제품 가격의 60%는 나라에서 부과하는 세금인 데다 국내 기름값을 결정하는 것은 국제 석유제품 가격이기 때문이다. 원유가격이 내리더라도 수요 증가로 국제 석유제품 가격이 오른다면 주유소에서 파는 휘발유 값은 오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정유산업은 우리나라 제조업의 근간을 이루는 업종 중 하나다. 석유는 가장 중요한 전략물자인 데다 전형적 장치산업이기 때문에 막대한 투자도 있어야 한다.


국제시장에서 중국 정유사들의 추격이 거세다. 우리 정유사들이 돈을 벌고도 '쉬쉬' 하는 동안 경쟁업체들은 숨가쁘게 달린다.
정유사들이 다시 한번 날개를 펼수 있도록 질타와 격려를 알맞게 배분해야 하는 이유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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