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직 준비중인 김모씨(43)는 지난달 말 강원도청 출자기관인 한국기후변화대응연구센터 연구직에 입사지원을 하려다 지원서 양식을 보고 거부감이 들었다. 센터측은 채용심사에 필요하다며 이씨의 주민번호 등이 포함된 개인정보 뿐 아니라 부모, 형제 등 직계가족 전부의 개인정보 제출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여성은 시댁 부모의 정보 제공과 함께 각각의 서명도 받도록 했다. 김씨는 "입사 관련 인사검증을 하는 데 가족, 시부모 개인정보가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며 "가족까지 검증하겠다는 의도인 것 같아 이력서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가 표준이력서를 제작·배포한지 10년이 지났지만 채용과정에서 과도한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사례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
■가족 정보 요구=보험용?
16일 한국기후변화대응연구센터에 따르면 지난달 연구직 직원 채용을 진행하면서 주민등록번호 등이 포함된 개인정보제공 동의와 직계가족, 여성은 시댁 부모를 포함한 개인정보를 요구했다. 논문 검증 등 채용 심사과정에서 개인정보가 필요하다는게 이유다. 그러나 가족 정보는 어떤 목적으로 활용되는지 설명하지 못했다. 센터 관계자는 "가족의 개인정보는 채용과정에서 사용되지 않는다"며 "문제가 발생할 경우 도움이 될까 싶어 과거부터 '보험용으로' 받았다"고 전했다. 센터는 지난해 2월 연구직 모집부터 동일한 이력서 양식을 사용했다.
고용노동부 등 정부 방침과는 배치되는 것이다. 고용부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고용부는 지난해 1월부터 지자체, 공단 등 공공 기관과 100명 이상 근로자를 보유한 사업장에 대해 표준 양식의 채용 이력서 이용을 권장하고 있다. 표준이력서에는 지원자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 정보 뿐만 아니라 가족 정보 항목이 아예 없다. 직무와 무관한 개인정보를 요구해서는 안된다는 판단에서다.
문제는 채용과정에서 가족정보 등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행위가 여전하다는 점이다. 잡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7월 구직자 168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상반기 입사지원서 제출시 직무와 무관한 개인정보를 기재했다고 답한 비율이 51.4%에 달했다. 응답자는 개인의 주민등록번호(60.9%), 가족사항(60.3%)을 가장 불필요한 정보로 꼽았다. 실제 지난달 정의당이 부산시와 산하 공공기관 49곳의 입사지원서 양식을 분석한 결과, 13곳이 이름과 나이 등 기본적인 가족 정보를 요구해 문제로 지적됐다.
■현대판 음서제 우려..."막을 근거 없어"
전문가들은 불필요한 정보요구가 채용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가인권위원회 관계자는 "가족 정보를 요구하는 행위가 현대판 음서제처럼 채용 차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이런 경우 적발이 까다롭기 때문에 직무 연관성이 있는 자료만 요구하도록 권장한다"고 설명했다. 또 과도한 정보수집 후 관리 미흡으로 개인정보가 유출될 가능성도 문제로 지적된다.
기업 관계자들은 가족 관계가 채용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한 제약회사 인사팀 관계자는 "지원자 아버지 직업이 병원장이라면 제약회사 입장에서도 고려할 수 있다"며 "가족 구성원을 파악, 채용에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행법상 채용과정에서 과도한 개인정보수집을 막을 근거는 없다. 국가인권위원회 관계자는 "채용과정에서 불필요한 정보를 요구할 경우 인권위에서 권고조치를 하고 있다"면서도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효과는 크지 않은 실정"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현재 인권위 자체적으로 300개 이상 상장 기업을 대상으로 입사시 요구 서류 등을 수집, 분석해 문제점을 면밀히 확인중"이라고 전했다.
integrity@fnnews.com 김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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