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샌더스를 다시 생각한다

김규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8.18 16:59

수정 2016.08.18 16:59

[데스크 칼럼] 샌더스를 다시 생각한다

미국 대통령선거 관련 뉴스의 중심은 이제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다. 민주당, 공화당 대선후보로 11월 8일 대선 본선을 앞두고 치열한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던 민주, 공화 양당의 숱한 정치인들도 지난 7월 대선후보 확정 전당대회를 끝으로 잊혀져가고 있다. 인심은 최종 승자만을 기억하는 게 익숙해서다.

하지만 민주당 대선후보 힐러리 클린턴과 막판까지 겨루었던 버니 샌더스(버몬트) 상원의원은 여전히 화제의 인물이다. 가십성 이야깃거리 정도를 제공하는 정치인이 아니다.
끊임없이 되새김되는 인물이다.

2016년 미국 대선 최대 이변 중 하나가 샌더스의 부상과 예상치 못했던 돌풍이었다. 민주당 당원도 아닌 샌더스가 자신을 '민주적 사회주의자'로 소개하며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유세를 시작할 무렵, 여론조사는 샌더스의 후보 지명 가능성을 5%로 봤다. 좌파 중의 좌파를 자처하는 정치인이 미국 주류 정당인 민주당 공식 경선무대에 나섰으니 이 같은 조사결과는 당연한 것이었다. 후보 경선 뚜껑을 열었다. '정치혁명'을 주창한 샌더스에게 젊은 유권자와 백인 남성들이 구름처럼 몰리기 시작했다. 젊은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 세대)의 지지율은 82%까지 치솟았다. 샌더스가 자신들의 어려움을 조목조목 대변해 줬기 때문이다.

샌더스의 메시지는 아주 간결했다. 미국 사회의 계층과 인종 간 불평등은 심화되고, 중산층은 몰락하고 있다. 최상위 1%에 소득의 85%가 편중되는 현실을 반드시 바꿔야 한다. 분노만을 부추긴 게 아니라 이를 수렴하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갑갑한 현실에 좌절하던 유권자들은 샌더스에게 쏠렸다. 최저임금 시간당 15달러로 인상, 공립대학 무상등록금, 모든 국민에게 건강보험 제공 등이 핵심 공약이었다. 샌더스는 민주당 내 경제학자들에게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강하게 받았지만 젊은 층의 열광적 지지를 바탕으로 민주당 대선 정강에 자신의 공약 80%가량을 포함시켰다.

샌더스가 던진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란 화두는 한국에서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먹혀들 이슈들이다. 우리나라의 양극화도 미국 못지않게 심각하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쓰이는 '헬조선'(우리나라를 지옥과 같다며 비하하는 말)이라는 은어가 실례다. 지난 4월 총선에서도 젊은 유권자들의 반란으로 '불평등' 이슈의 휘발성은 확인됐다. 내년 대선에는 양극화 문제가 최대 쟁점 중 하나로 떠오를 것이 분명하다.

우리나라 정치권도 일찌감치 샌더스 활용에 나선 상황이다. 진보의 색깔이 상대적으로 강한 야권이 적극적이다. 총선 전 야권에서 '버니 샌더스, 더민주 혁신을 말하다' '샌더스 돌풍과 한국정치' 등을 주제로 한 토론회가 열리기도 했다. 현재 진행 중인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경선에서도 '샌더스론'이 등장한다.

미 대선 경선후보 중 최고령이었던 74세의 샌더스가 역설적으로 미국 젊은층에 최고의 인기인으로 부각된 것은 미국 사회의 좌절을 제대로 짚어내고 비전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청년실업률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다가오는 대선은 유권자들의 분노를 제대로 추스르고 미래를 말하는 정당에 승산이 있다. 한국 정치권도 '보수 대 진보' '성장 대 분배'라는 진영논리를 깨고 젊은층의 절망과 소외계층의 아우성에 답을 내놓아야 한다.
얄팍한 '샌더스 마케팅'보다는 '샌더스 현상'이 한국 정당과 정치에 주는 교훈을 되새김할 때다.

mirror@fnnews.com 김규성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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