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검찰·법원

[단독]"현대·기아차 산재사망 직원 자녀 특채 단협 '무효'" 항소심 첫 판결

조상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8.23 15:56

수정 2016.08.23 15:56

업무상 재해(산재)로 사망한 직원의 자녀를 특별채용하도록 한 현대·기아자동차의 단체협약(단협)은 무효라는 항소심 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고용세습 조항은 구직자를 사회적 신분에 따라 차별하는 것으로, 일자리 대물림을 초래할 수 있어 사회 정의에도 반한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서울고법 민사8부(여미숙 부장판사)는 기아차 직원이었던 이모씨 유족이 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이 "이씨 자녀를 채용해 달라"는 유족의 청구를 기각했다고 23일 밝혔다.

1985년 기아차에 입사해 23년간 금형세척 업무를 한 이씨는 2008년 2월 현대차 남양연구소로 전출한지 6개월 뒤 백혈병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2010년 사망했다. 이씨 유족이 낸 유족급여 신청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은 "이씨가 세척제에 함유된 발암물질인 벤젠에 오랜 시간 노출돼 백혈병을 앓게 됐다"며 산재를 인정, 1억8000여만원을 지급했다.

그러자 이씨 유족은 회사의 단협을 근거로 자녀를 채용해 줄 것과 안전배려 의무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금으로 회사가 2억360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다.
현대·기아차 노사는 '산재로 사망한 조합원의 직계가족 1인에 대해 결격사유가 없는 한 요청일로부터 6개월 내 특별채용하도록 한다'는 단협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재판부는 "고용계약을 장래 불특정 시점에 불특정인과 체결하도록 강제하는 단협은 사용자 고용계약의 자유를 현저하게 제한하는 것으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배돼 무효"라고 판시했다. 유족의 채용을 확정하도록 제도화하는 방식은 사실상 일자리를 대물림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고착된 노동자 계급의 출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는 만큼 사회 정의관념에 반한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청년 실업문제까지 제기하며 해당 단협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재판부는 "최근 청년실업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하고 있고 20~30대 청년들의 기회 불공정성에 대한 좌절감과 분노가 커져가는 상황에서 취업기회 제공의 평등에 관한 기준은 종전보다 엄격히 정립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재능과 노력 이외의 것으로 취업할 수 있는 길은 사회구성원의 충분한 합의 후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요건 설정을 통해 예외적으로 마련돼야 하며 단협규정에 의해 무제한적으로 인정돼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다만 회사가 이씨에게 10년간 호흡기 보호구를 지급하지 않는 등 안전배려의무를 위반한 책임을 물어 이씨 유족에게 1억8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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