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사설

[여의나루] 공직사회가 무너지고 있다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8.23 16:54

수정 2016.08.23 16:54

[여의나루] 공직사회가 무너지고 있다

민간기업이 구조조정 등으로 직업 안정성이 떨어지게 됨에 따라 공무원의 인기는 과거보다 높아졌다. 그러나 공무원의 근무기강, 일하는 의욕은 과거보다 낮아졌다고 생각된다.

세종시에는 국무총리실과 대부분의 경제부처가 있다. 장.차관은 일주일에 하루이틀 세종시에 들른다고 한다. 차관보, 국장들도 일주일에 2~3일 세종시에 근무한다. 과장급 이하 직원들도 수시로 서울로 출장 다닌다고 한다.
서울 출장이 잦다 보니 국장급 이상 간부들은 대부분 서울에 거주하고 있다. 금요일에는 대부분의 간부가 서울 출장이라 오전부터 주말 분위기라고 한다. 세종시 부처들은 간부들이 세종시에 근무하는 시간이 별로 없으므로 근무기강이 제대로 설 리 없다. 직원들이 뿔뿔이 흩어져 있다 보니 직접 모여 심층토론할 기회도 별로 없다. 많은 경우 e메일이나 전화, 카톡으로 소통하고 있다. 직접 대면보고를 할 기회가 적으므로 각종 경험 전수 등 후배 공무원에 대한 교육.훈련도 할 수 없다. 신속한 정책결정도 안되고 정책 품질도 떨어진다.

최근 공무원들의 적극적인 정책개발 의지도 약해졌다. 과거에는 공무원들이 각종 정책을 주도적으로 추진했으나 요즈음은 무슨 일이 터지면 수동적으로 수습하는 데 급급한 모습이다. 이번 전력요금 사태가 대표적인 예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과거에 비해 국회와 시민단체들의 영향력이 커져 공무원들의 자긍심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행정부가 중점 추진하는 정책들이 국회에서 제동이 걸리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행정부 제안 입법이 대부분이었는데 최근에는 국회의원 제안 입법이 더 많다. 국장.과장급 공무원들이 국회에 불려다니는 횟수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행정부 공무원이 국회의 시녀라는 자조감이 늘고 있다.

공무원의 사회적 위상 저하도 사기 저하의 원인이 되고 있다. 세월호 사건 이후 관피아란 말이 생겼다. 관피아는 관료+마피아의 합성어로 관료를 범죄집단으로 희화화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공무원들이 퇴직 후 관련기관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대폭 줄었다. 과거에는 퇴직 후에도 일자리에 대한 희망이 있었으므로 열심히 일해서 빨리 승진하려 했다. 요즈음은 퇴직 후 갈 데가 없는데 무엇하러 빨리 승진하느냐는 것이다. 기재부의 경우 과거에는 고위관료로 성장하기 위해서 일이 힘들더라도 예산실이나 경제정책국을 선호했는데 요즈음은 상대적으로 일이 적은 세제실이 인기가 있다고 한다. '가늘고 길게', 승진보다는 편하게 정년까지 근무하기를 원한다고 한다.

공직사회가 무너지는 현상은 무엇보다도 심각한 문제다. 최근 경제규모가 커져 민간의 역할이 커지고 정부 역할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정부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공무원이 법과 제도 등 사회의 대부분 룰을 정한다. 공무원들이 불합리한 규제를 하면 수많은 기업이나 국민들이 고생을 한다. 기업이 아무리 창의성을 발휘하려 해도 정부의 규제가 있으면 하기가 어렵다. 매년 400조원이 넘는 국가예산을 공무원들이 운영한다. 공무원들에 의해 낭비되기도 하고 요긴하게 쓰이기도 한다. 공무원들이 부패하고 비효율적으로 일하면 그 피해자는 국민이다. 그동안 급속한 경제성장의 배경에는 기업과 국민의 노력 못지않게 공무원들의 헌신도 있었다. 공직사회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상태에서 국가가 잘된 경우는 없다. 앞으로 저성장, 양극화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과거보다 공직자들이 더욱 분발해야 할 때다.

공직사회 분위기 쇄신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경제문제가 산적해 있는데 세종시 경제부처는 사실상 근무시간의 절반만 일한다.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다. 세종시 문제는 정치권과 국회에 책임이 있다.
왜 국회는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하는가?

인센티브 확대 등 공무원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여건 조성과 부정부패에 대한 신상필벌의 근무기강 확립 대책이 강구되어야 한다.

최종찬 국가경영전략연구원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