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마사회 알바, 가족 신상정보로 심사?

김규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8.23 17:28

수정 2016.08.23 17:28

이력서 필수 기재사항에 증조부 신상까지 포함
2011년 국감 지적에도 지금까지 개선되지 않아
한국마사회가 채용하는 PA(공원 도우미) 이력서 항목. 가족사항에 배우자부터 손자/손녀까지 20여 항목이 나타나 있다. 응시자는 가족사항을 필수로 기재해야 한다.
한국마사회가 채용하는 PA(공원 도우미) 이력서 항목. 가족사항에 배우자부터 손자/손녀까지 20여 항목이 나타나 있다. 응시자는 가족사항을 필수로 기재해야 한다.


#.대학생 이모씨(23.여)는 이달 초 한국마사회 PA(공원도우미)에 지원하려다 이력서 양식을 보고 당황했다. 마사회가 제시한 이력서에는 부모.형제는 물론이고 조부모, 증조부모 신상정보까지 포함돼 있던 것이다.
결혼한 사람은 배우자의 부모, 조부모 등 직업까지 모두 적을 수 있었고 가족사항은 필수입력 사항이었다. 이씨는 "아르바이트생 뽑으면서 가족환경 조사 느낌을 받았다"며 "집안이 좋은 사람은 많이 쓰고 싶겠지만 아버지, 어머니 모두 무직인 상태여서 직업을 적으면서도 무시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고 털어놨다.

한국마사회가 아르바이트생을 채용하면서 가족정보 등을 과다 요구, 수집한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채용과정에서 취득한 가족정보가 채용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마사회는 앞서 지난 2011년 직원 가족의 상당수를 자사 아르바이트로 채용한 사실이 드러나 불공정 인사 지적을 받은 바 있다. 마사회 PA는 높은 시급과 안정성으로 지원자 사이에서는 '신의 알바'로 불린다. 현재 지원해도 6개월 후에야 채용 여부가 결정될 만큼 지원자가 누적된 상태다.

■"좋은 직업 가진 친척 기재 고민"

23일 한국마사회 등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서울, 제주, 부산 등 전국 5개 지점에서 PA를 채용키로 하고 이력서에 부모, 조부, 증조부 등 20여 항목의 가족 사항을 기재토록 했다. 채용 심사 등에 필요하다는 게 이유다. 그러나 가족 정보가 구체적으로 어떤 목적으로 활용되는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마사회 관계자는 "과거부터 채용 목적으로 사용된 이력서에 가족 관계 등이 포함된 것 같다"며 "지원자가 기재하고 싶지 않다면 공란으로 둬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마사회측 이력서를 살펴보면 가족 사항은 성명, 주소 등과 동일하게 빨간점이 찍혀 있었다. 필수 기재 사항이라는 뜻이다. 또 다른 지원자 김모씨(25)는 "아버지, 할아버지 등의 이름, 직업 등을 모두 기록하니 100자 가량이 나왔다"며 "마사회 자기소개서는 총 200자에 불과해 작성 비중으로 보면 자소서만큼 가족사항 비중이 커 보여 무시하기 어려웠다"고 전했다. 그는 "평소 연락이 잘 닿지 않은 친척이라도 좋은 직업이면 기록해야 하는건지 고민이 많이 됐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마사회가 2011년 국정감사에서 PA 채용 관련 불공정 인사로 지적을 받은 바 있다는 점이다. 당시 마사회는 정규직원 773명 중 133명의 직원 친인척이 마사회 PA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파악돼 정규직 직원 가족에게 특혜를 준다는 비판을 받았다. 마사회는 채용과정에서 줄곧 가족사항을 요구, 문제로 지적받고도 지금까지 크게 개선되지 않은 셈이다.

■정부 방침과 배치… 채용차별 우려까지

마사회의 이같은 채용행태는 정부의 채용 방침과도 배치된다. 고용노동부는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난해 1월부터 모든 공공기관에 표준 양식의 채용 이력서를 권장하고 있다. 표준이력서에는 가족 정보 항목이 아예 없다.
직무와 무관한 정보를 요구해서는 안된다는 판단에서다.

국가인권위원회 관계자는 "아르바이트생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가족정보가 어떤 목적으로 쓰이는지 이해되지 않는다"며 "가족신상은 채용 과정에서 당락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수집을 금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지적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공공기관이 과도한 가족관계를 요구하는 행위는 지나친 것 같다"면서도 "전국 고용부 지청을 통해 표준이력서 양식을 권장하지만 현재로선 따르지 않아도 강제 수단이 없다"고 말했다.

integrity@fnnews.com 김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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