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위해성 있다"는 환경부에 묻지도 않고 사건 덮은 공정위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8.24 13:27

수정 2016.08.24 13:27

- 환경부 "위해성 있다고 보기 때문에 지원하는 것"
- "공정위가 자료 요청하지도, 의견을 묻지도 않아"
공정거래위원회가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하면서 수많은 피해자를 만들어 낸 애경·SK케미칼·이마트의 표시광고법 위반 혐의에 대해 사실상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이들 회사가 자사의 가습기살균제 제품에 독성물질인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 성분이 포함됐다는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고 고의로 은폐·누락한 채 판매했다는 것이 쟁점인데 현 단계에선 CMIT·MIT의 위해성이 밝혀지지 않아 법위반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정위는 조사 과정에서 주무부처인 환경부에게 CMIT·MIT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자료를 요청하지도, 자문 혹은 의견을 구하지도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CMIT와 MIT는 위해성이 있다”는 게 환경부의 분명한 입장인데 아예 듣지 않았다는 얘기다.

다만 공정위는 위해성이 밝혀지면 다시 제재에 착수하겠다는 여지를 남겼다.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수사해온 검찰이 그 동안 손을 놓고 있었던 CMIT·MIT 제조·판매 업체에 대해 최근에야 조사에 들어간 것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사법처리를 하는 검찰 조사 내용을 보고 판단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따라서 공정위가 경제검찰을 자처하면서도 사법당국과 기업의 눈치를 지나치게 보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공정위는 애경·SK케미칼·이마트의 이 같은 혐의에 대해 지난 19일 소위원회를 열어 심의절차종료를 의결했다고 24일 발표했다. 심의절차종료는 법위반 판단이 불가능해 사건을 그냥 끝내는 것을 뜻한다.

공정위는 CMIT·MIT와 이를 1% 이상 함유한 혼합물질에 대해 환경부가 지난 2012년 9월 유독물로 지정했지만 원액을 0.015%로 희석해 제조한 가습기살균제의 경우 아직 인체위해성이 인정되는 않고 있다는 점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애경은 SK가 제조한 ‘홈클리닉 가습기메이트’를 2002년 10월~2011년 8월까지, 이마트는 이 제품을 애경으로부터 납품받은 뒤 ‘이마트(이플러스) 가습기살균제’라는 이름(PB)으로 2006년 10월~2011년 8월까지 각각 판매했다.

애경은 이 과정에서 제품라벨 등에 제품의 주성분명 및 주성분인 CMIT·MIT가 독성물질이라는 점을 은폐·누락한 표시광고법 위반(기만적인 표시·광고)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제품이 ‘품질경영 및 공산품안전관리법(품공법)’ 상 안전관리대상이 아님에도 ‘품공법에 의한 품질표시’ 등으로 표기하고 ‘천연솔잎향의 산림욕효과’ 등 인체에 유익한 것처럼 기재한 혐의도 받고 있다.

하지만 공정위는 CMIT·MIT의 인체위해성 여부가 확인된 바 없고 현재 이에 대한 환경부의 추가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 심의절차종료를 의결했다.

품공법에 의한 품질표시 및 솔잎향의 산림욕 효과 표기의 경우 안전인증마크(KC) 등을 적극적으로 표시한 것이 아니고 제품에 포함된 천연솔잎향 등 성분에 의해 삼림욕 효과를 느낄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 가능하다는 점도 참작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위해성 판단은 환경부나 질병관리본부의 전문적인 영역”이라며 “공정위가 전문적인 관련 부처의 판단 결과를 보면 현 단계에서는 위해성이 없고, 무해하고, 추가 조사가 필요하기 때문에 위법하다고 결론을 내기에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정위가 말하는 전문적인 관련 부처의 얘기는 다르다. 환경부 관계자는 “CMIT·MIT 사용으로 폐에 피해가 나타났다는 전문가의 판정에 따라 피해지원을 하기 때문에 환경부는 위해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고 분명히 했다.

그는 공정위가 자료나 자문을 구했느냐는 질문에는 “그런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공정위가 자료를 요구하거나 전화를 한 적도 없으며 어떻게 그런 의결을 내렸는지 모르겠다”고 피력했다.

현재까지 환경부가 파악한 애경 홈클리닉 가습기메이트와 이마트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모두 69명이며 이 가운데 14명이 목숨을 잃었다.
정부는 이 중 12명(사망자 6명)을 지원 대상으로 선정했다. 애경 제품 단독 사용 피해자는 18명, 사망자는 3명이다.


국정조사 특위 야당 의원은 공동 성명을 내고 “가습기메이트(CMIT·MIT) 단독사용으로 특이질환인 폐섬유화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 정부의 공식위원회인 폐손상조사위원회와 폐이외질환검토위원회의 결정”이라며 “공정위가 소비자가 아닌 대기업인 SK케미칼과 이마트의 편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책임으로부터 면죄부를 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