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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유사은행제도 도입.. 산업자본의 은행소유 사실상 허용

허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9.11 20:14

수정 2016.09.11 22:13

한국은 규제 탓에 금융권 새바람이라던 인터넷전문은행 출발도 못했는데..
은행법 개정안 불발
KT.카카오 예비인가 따냈지만 '은행, 대기업 사금고' 우려에 은산분리 완화 추진 지지부진
업계에선 '지나친 걱정' 의견
"최대주주에 대출 금지하는 내용 담아서 통과시키면 될 일"
경쟁력 키워가는 해외업체들.. 美서 현재 운영되는 곳만 30곳
상위 10곳 자산 4400억弗 달해.. 비은행권서 만든 곳이 생존률↑
日은 산업자본에 설립 허용.. 6곳중 4곳 대주주가 ICT기업
中은 알리바바.텐센트 뛰어들어
美, 유사은행제도 도입.. 산업자본의 은행소유 사실상 허용

"인터넷전문은행이라는 '메기'를 투입해 금융권에 새바람을 일으키게 할 것" -임종룡 금융위원장

연못 안의 메기 역할을 기대하며 도입키로 한 인터넷전문은행이 시작도 하기 전부터 가두리 양식장에 갇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서 산업자본이라도 지분을 50%까지 보유할 수 있도록 하는 은행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목이 잡혀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를 받은 기업들은 은행법 개정을 염두에 두고 사업을 추진해왔는데, 본 인가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은행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다. 자칫 혁신의 아이콘이었던 인터넷전문은행이 기존 은행의 지점 수준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우리와 금융권 사정이 가장 비슷한 미국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도 우리나라처럼 산업자본의 은행지분을 규제하고 있지만 산업대부회사(ILC)라는 유사은행 제도를 통해 산업자본의 실질적 은행소유를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 왜 필요한가

11일 인터넷전문은행은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혁신적인 새로운 금융 서비스를 선보이기 위해 도입됐다. 앞서 소개한 임종룡 금융위원장의 말처럼 은행권에 메기를 투입해 경쟁이 발생하도록 하고 경쟁을 통해 이용자들에게 새로운 혜택을 제공하겠다는 취지였다.

특히 스마트폰 등 ICT의 발전으로 굳이 은행지점을 찾아가지 않아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하나로 거의 모든 은행 업무를 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인건비를 대폭 줄인 비대면 종합은행으로 국민들에게 중금리 대출 등을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이 인터넷전문은행을 도입해 금융혁신에 나서는 동안 우리도 꾸준히 인터넷전문은행 도입 논의가 이뤄졌다. 하지만 최저 자본금 규제, 금융실명제 등이 인터넷전문은행을 가로막았다. 우여곡절 끝에 금융위가 은산분리 완화를 추진, 인터넷전문은행을 출범시키겠다고 발표했고, 지난해 말 KT를 주축으로 한 K뱅크 컨소시엄과 카카오를 중심으로 한 카카오뱅크 컨소시엄이 예비인가를 따냈다.

■은행법 개정 불발, 은행 자회사 될라 '우려'

예비인가 사업자들은 착실히 본 인가를 받기 위해 준비해왔지만 정부와 국회는 사업자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통과될 것으로 예상됐던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50% 허용을 골자로 하는 은행법 개정안이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해 자동 폐기된 것이다.

20대 국회가 열리자마자 새누리당 강석진 의원과 김용태 의원이 재발의했지만 여전히 야당 측의 반대가 거세다. 은산분리를 완화했다가는 자칫 은행이 대기업의 사금고가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재벌이 소유 은행으로부터 50억원 이상을 대출받으려면 이사회 승인을 거쳐야 하는 등 이미 공정거래법으로도 은행의 사금고화를 막아두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말 은행의 사금고화가 걱정이라면 차라리 최대주주에게 대출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담아서 법을 통과시키면 될 일"이라고 강조했다

은행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 혁신의 촉매제였던 인터넷전문은행은 기존 은행의 자회사로 전락할수도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K뱅크 준비법인 안효조 대표는 "KT가 은행법에 가로막혀 지분을 높일 수 없게 되면 은행법 제한을 받지 않는 시중은행이 지분을 높여 K뱅크 사업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게 될수도 있다"며 "그렇게 되면 IT기업 문화를 가지고 있는 K뱅크가 다시 기존 은행 문화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인터넷전문은행, 비은행기업이 해야 성공한다

인터넷전문은행이 가장 활성화된 미국도 우리처럼 은산분리 규정(산업자본은 25%까지만 은행지분을 가질 수 있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은행 혁신을 위해 산업대부회사라는 새로운 제도를 만들었다. 은행과 비슷한 유사은행으로 이 산업대부회사는 산업자본의 지분 제한 규정이 없다.

산업대부회사 제도가 도입된 이후 인터넷전문은행을 급속도로 확대됐다. 현재 30개가 넘는 인터넷전문은행이 설립됐으며 10대 인터넷전문은행의 총 자산은 4400억 달러, 총 예금은 3039억 달러로 전체 상업 은행 대비 각각 3.1%, 2.8%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ICT 기반 차별화된 서비스가 인터넷전문은행의 경쟁력으로 꼽힌다. 인터넷전문은행 제도 도입 이후 지난 2014년까지 총 14곳의 은행이 설립됐다가 퇴출됐는데 이 가운데 10곳의 설립주체가 기존 은행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은행이 설립한 인터넷전문은행의 생존율은 50% 도 안된다. 비은행기업이 설립주체인 경우에는 생존율이 79%로 나타났다.

비은행기업이 자신들이 원래 잘했던 분야와 은행을 결합하거나 ICT를 도입해 혁신적인 서비스를 도입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방증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인터넷전문은행 찰스 슈왑은 빅데이터와 컴퓨터 알고리즘을 융합한 로보어드바이저로 개인 투자 성향에 맞춘 자동 온라인 자산관리 서비스로 미국인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찰스 슈왑은 증권사가 설립한 은행으로 전문성을 살려 자산관리로 이용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 회사로 잘 알려진 GM이 설립한 알리 뱅크도 대표적인 인터넷전문은행이다. 자동차 회사가 설립한 회사 답게 차량 딜러 대상 기업 대출이나 구매자 대상 오토론 등 자동차 대출관련 서비스에 특화돼 있다. 월마트 계열 '고뱅크'는 간편인증 계좌조회 '잔액 슬라이드'와 '지출 관리' '점쟁이' 서비스 등 ICT를 활용한 서비스로 이용자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일본과 중국도 인터넷전문은행으로 금융혁신을 이뤄낸 국가다. 일본은 지난 2000년 ICT 기업 등 산업 자본의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허용했다. 현재 일본 내 6개 인터넷전문은행 가운데 4곳의 대주주가 ICT 기업이다.
중국은 산업, 금융자본 여부 관계없이 인터넷전문은행 지분을 30%까지 보유할 수 있도록 했다. 텐센트, 알리바바 유명 ICT기업들이 인터넷전문은행에 뛰어들고 있는 것도 규제완화 덕분이다.


서강대학교 이석근 교수는 "원하든 원치않든 전세계적으로 규제완화가 가속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만 규제를 하다가 바보가 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며 "규제를 완화한다고 금융혁신에 성공한 나라들을 바로 따라갈수는 없겠지만 규제 완화 없이는 따라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조언했다.

jjoony@fnnews.com 허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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