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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심판받는 법원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9.27 17:12

수정 2016.09.27 17:12

[여의나루] 심판받는 법원


심판하는 법원이 최근 심판받는 위치에 서게 됐다. 중견 법관이 직무와 관련해 거액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 기소돼 국민이나 법원 모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대법원장이 직접 나서서 국민에게 공식 사과까지 했다.

인류가 공동체생활을 영위한 이래 재판관 직역이 독자적 권력을 형성하면서부터 지배자는 판관 비리를 경고해 왔다. 구약성경에는 모세가 뇌물에 대해 '뇌물은 지혜로운 이들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이들의 송사를 뒤엎어 버린다'고 지적했다. 헤르도토스의 '역사(Historiai)'를 보면 페르시아의 캄비세스왕은 금품을 받고 부정 판결을 한 판사 시삼네스의 피부를 모두 벗기고는 그 벗겨낸 피부를 그가 재판 시 늘 앉았던 의자에 씌워놓게 하고는 그 후임으로 그의 아들 오티네스를 임명해 그 의자에서 재판하게 했다.


그럼에도 근대에 이르기까지 유럽에는 법관 뇌물수수의 폐해가 만연했다. 영국 대법관 프랜시스 베이컨은 예순 살에 상원에서 뇌물죄를 고백하고는 런던탑에 갇히기도 했다. 괴테의 자서전적 작품 '시와 진실'에서는 당시의 사법 풍경과 베츠랄 고등법원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베츠랄 고등법원 판사 중에서 귀족 서너 명이 뇌물죄로 체포되었는데, 괴테는 이 자서전에서 '오랫동안 휼륭한 인물로 존경받던 사람들이 매우 수치스러운 죄의 문책을 받아 치욕적인 형벌에 처해지는 슬픈 광경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고 적고 있다.

오래 전부터 뇌물 수수의 문이 활짝 열렸던 데에는 선물이 금지되는 경우와 허용되는 경우 사이에 명확한 한계가 그어져 있지 않았던 점이 크게 작용했다. 중세시대 뇌물은 항아리에 넣은 포도주와 바구니에 담긴 고급 과자, 그리고 사냥에서 잡은 사슴고기 등의 성찬이 주류를 이루었다. 2004년 미국 연방대법관 스칼리아는 체니 부통령의 소송이 대법원에 계류 중인데도 체니 부통령과 함께 오리 사냥을 떠났다. 그는 LA타임스의 질의 서면답변에서 '오리고기 맛이 좋았다'며 이 사건이 아무 일도 아닌 듯 빈정대는 투의 해명을 했다.

괴테 시절 사법관 시보에 대한 보수로 시청에서 토끼고기를 주었다고 하니, 법관 급여의 불충분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된다. 법관은 청탁하거나 승소한 당사자로부터 받는 금품을 정의의 대가 내지 재판 수수료, 사례금으로 여겼다. 이런 법관의 심리상태는 독일의 대표적 극작가 브레히트의 희곡 '코카서스의 백묵원(白墨圓)'에 등장하는 그루지야 판사 아즈닥의 소송당사자에 대한 불만에 잘 나타나 있다. "그대들은 푸줏간에 갈 때 값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나, 법관에게 갈 때는 마치 장례식 후의 잔칫상에 가는 것처럼 간다."

법원은 최근 윤리적으로 많이 고양돼 있다. 그렇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요구되는 것은 법원의 보다 혹독한 자기비판과 자정 노력이다. 쓰리지만 환부를 과감하게 도려내고 거기에다 소금을 듬뿍 뿌려야 한다.

요즘과 같은 극심한 자본주의 경쟁 체제와 물질지상주의가 판치는 세상에서 지혜롭고 의로운 법관이 수지가 맞지 않을뿐더러 종종 부패집단으로 매도되는 비굴한 상황을 견디면서 의연하게 재판 업무을 계속 맡으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의롭고 지혜로운 법관한테 재판을 받고 싶은데, 미래가 그리 밝게 보이지 않아 답답하다. 현명하고 공정한 재판관을 뽑고, 이러한 재판관이 법원에 계속 머물 수 있게 하는 것은 비단 법원행정뿐만 아니라 행정부와 국회의 책무이기도 하다.
이러한 소망을 실현함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사법과 법관에 대한 국민의 따뜻한 시선과 성원 그리고 격려가 요청된다.

이주흥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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