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특별기고

[특별기고] '일 중독'과 건강한 놀이문화

정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10.09 16:59

수정 2016.10.09 16:59

[특별기고] '일 중독'과 건강한 놀이문화

얼마 전 교사 직무연수에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건강한 게임문화를 이뤄가기 위해 학생들을 어떻게 상담하고 지도해야 하는지 고민을 나누는 자리였다. 학교에서 겪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물었더니 한 선생님께서 오히려 자녀들의 스마트폰 게임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고 하셨다. 더욱 속 터지는 것은 아이들과 함께 스마트폰을 붙잡고 놓지 않는 남편이라고 했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게임은 더 이상 어린아이들만 즐기는 '오락'이 아니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이 2015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30~40대 스마트폰 보급률은 99.8%, 50대는 89.2%다. 애플리케이션(앱) 사용 통계에서 게임 이용 빈도는 메신저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이어 세번째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16년 실시한 게임 이용자 실태조사에서도 40대 50.8%, 50대 48.3%가 게임을 해본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게임은 디지털 시대에 가장 쉽고 친근하게 만날 수 있는 놀이 중 하나인 셈이다.

사람들이 게임을 이렇게 널리 즐기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게임을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냉담하다. 강연 시간에도 "게임이 긍정적인 효과도 있겠지만 결국 재미만 위한 것이 아닌가요"라는 질문이 나왔다. 나는 우리 모두에게 조용히 되묻고 싶다. "재미있게 사는 것이 나쁜가요?"

한국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2113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멕시코 다음으로 길다. 늦은 시간까지 일하고 지쳐서 집으로 돌아가는 중년 성인의 뒷모습은 우리의 익숙한 초상이다. 자라나는 아이들도 다르지 않다. 어른들이 일터에 묶인 만큼,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에 묶여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아이들의 1일 학습시간은 7시간50분으로 OECD 국가 중 1위다.

삶의 만족도 및 행복지수는 해마다 바닥을 친다. OECD '2015 삶의 질 보고서'를 살펴보면 우리나라 국민의 삶의 만족도가 OECD 국가 34개국 중 27위이며, 나이가 들수록 삶의 만족도는 더 떨어진다. 아동들의 삶의 만족도 순위도 최하위권이다. 2011년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우리나라의 극심한 경쟁과 사교육에 대한 우려와 함께 여가·오락 활동에 대한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라고 권고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일할 시간이나 공부할 시간을 갉아먹는 모든 것을 죄악으로 여기고 있다. 자기계발에 도움도 되지 않고 재미만 추구하는 여가활동은 쓸모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산업화 시대의 인식 구조다. 한국 사회는 노동생산성 위주의 개발시대를 거쳐 이제는 창의성이 강조되는 지식사회로 변모하고 있다. 산업구조도 사람들의 안정과 정년을 더 이상 보장해주지 않는다. 개성과 다양성은 더욱 중요해진다. 젊은 세대일수록 다채로운 경험과 문화적 만족감을 누리는 삶을 더 가치 있게 여긴다.


21세기 각박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는 놀이와 여가의 가치를 잠시 되새겨 성찰할 필요가 있다. 인생을 낭비한다고 여겨왔던 놀이와 여가를 통해 힘든 하루를 버틸 힘을 얻고, 매일의 새로움을 밝히고, 창의성을 충전하는 중요한 계기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영임 KAIST 문화기술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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