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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일 칼럼] 국회 논의의 수준을 높이자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10.11 17:29

수정 2016.10.11 17:29

[노동일 칼럼] 국회 논의의 수준을 높이자

영화배우 조지 클루니가 의회 청문회장에 섰다. 2012년 3월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석상에서 의원들과 마주한 것이다. 그는 내전에 시달리는 수단을 직접 방문하는 등 국제사회의 지원을 촉구해온 바 있다. 자신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클루니의 목소리는 어떤 전문가보다 호소력이 있었다. 배우 밴 애플렉도 미 의회 청문회장에 나온 적이 있다. 2015년 3월에는 본인 말대로 세계 최고의 자선사업가인 빌 게이츠와 함께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는 영광을 가졌다.
애플렉은 콩고 등에서 벌어지는 인권유린 상황에 관심을 기울여온 터이다. 아프리카 문제에 대해 미국이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그의 발언이 설득력이 있는 이유였다. 게이츠 역시 에볼라 백신 개발지원 등 지구적 차원의 자선활동을 해온 경력이 있다. 효과적인 인도주의적 지원 방안에 대해 의원들에게 조언하는 장면이 어색하지 않았다.

미국 의회는 청문회에 연예인과 유명인들을 자주 부른다.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그들의 후광을 이용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싶다. 때로는 의원 수십명보다 이들의 한마디가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때가 있다. 아프리카의 참상에 무심하던 사람들도 클루니나 애플렉의 한마디에는 귀를 기울인다. 유명인들도 관심을 끄는 역할만 하는 게 아니다. 이름 값 못지않게 구체적인 의견을 제시하면서 생산적인 논의의 장을 만들어 간다.

국정감사가 진행 중인 국회에서 난데없이 연예인 관련 논란이 일었다. 새누리당 백승주 의원이 국방위 국감장에서 김제동씨의 과거 발언을 문제 삼은 때문이다. 김씨가 방송에서 군사령관 부인을 아주머니라고 불렀다가 13일간 영창생활을 했다는 말이 사달을 일으킨 것이다. 그의 말마따나 웃자고 한 얘기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면 당시 '군사령관'의 명예가 문제 될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국감장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얘기다. 기록이 없을 수도 있고, 당사자의 주장만 있을 뿐 진위 확인이 어려울 수 있다. 결국 평소 야권 성향을 보여온 김씨에 대한 보복 아니냐는 진영논리로 공방만 벌이는 익숙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이런 사안을 국회에서 다루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일률적 기준을 말하기는 어렵다. 분명한 것은 이 문제를 포함, 우리 국회의 논의 수준에 한숨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막말과 고성, 삿대질이 횡행하고 상대편과 우리 편만을 생각하는 좁은 시야는 여전하다. 느닷없이 "사퇴하라"를 입에 달고, "멍텅구리" "배운 게 없어서" 등 듣기에도 민망한 어휘들이 난무한다.

미국 청문회와 우리 국정감사를 평면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렵다. 정책적 조언을 구하는 것과 감사의 장이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미국 의회에서의 논의 과정은 지켜보는 사람조차 절로 수준이 높아지고 정신이 고양된다고 생각되는 경우가 많다. 주제도 그렇지만 깊이 있는 토론을 하면서도 상대를 존중하고 발언을 경청한다. 심심치 않게 유머를 곁들이기도 한다. 이를 보자면 막장 드라마로 흐르는 미국 대선 과정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렇다고 너무 자학하지는 말자. 미국 의회도 예전에는 막말은 물론 난투극의 장이었던 때가 있었다. 지팡이로 상대당 의원을 폭행, 중상을 입힌 사례도 있다.
그런 세월을 거쳐 오늘날 고상한 모습으로 진화해온 것이다. 연예인을 증인으로 불러 묵직한 주제를 함께 논의하는 우리 국회의 모습도 언젠가는 볼 수 있으리라. 희망고문에 해당하지만 않는다면 그런 소망이라도 가져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노동일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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