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국악으로 되살아난‘絃의 노래’

조윤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10.19 17:12

수정 2016.10.19 17:14

국립국악원, 김훈의 소설 ‘현의노래’ 국악극으로 만들어
내달 10일~20일 공연
김훈의 유려한 필체 살리기 위해 이병훈 연출가 1년 남짓 정성 들여
가야의 참담함과 우륵의 인생 담긴 오라토리오식 국악극으로 만들어
우륵에는 가야금 연주자 김형섭, 제자 역엔 뮤지컬배우 김태문
여인 ‘아라’ 역엔 무용단원 이하경, 자유로운 가야의 선율 담아내
김훈의 원작소설을 국악극으로 각색한 '현의 노래'는 우륵이 전하는 희망과 화합의 메시지를 전통음악에 실어나른다.
김훈의 원작소설을 국악극으로 각색한 '현의 노래'는 우륵이 전하는 희망과 화합의 메시지를 전통음악에 실어나른다.

국악으로 되살아난‘絃의 노래’

"가야왕이 음란하여 스스로 멸망한 것이지 음악이야 무슨 죄가 있겠는가. 나라의 다스려짐과 어지러움은 음조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 삼국사기의 이 짧은 한 대목만으로 탄생한 김훈 소설 '현의 노래'가 국악으로 되살아났다.

참담하고 잔인한 칼의 세계에 울려퍼진 현의 소리. 가야금의 예인 우륵의 생애를 다룬 소설 '현의 노래'는 가야금과 전통 무용, 우리 가락이 더해져 책이라는 옷을 벗고 우리 눈앞에 펼쳐진다.

원작의 유려한 문장은 내레이션으로, 등장인물들의 감정은 아리아로, 극적인 전개는 합창으로 전달한다.
가야금을 앞세운 현악기 연주는 극의 비장함을 더한다.

국립국악원은 지난 18일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국악극 '현의 노래'의 개막을 알렸다. 국립국악원은 김훈 작가와 협의를 통해 '현의 노래' 공연을 기획하고 1년 남짓 정성을 기울여왔다. 2014년 음악극 '공무도하'에 이어지는 작품으로 1500년 전 가야 왕국과 가야금, 우륵의 이야기로 이 시대 관객과 소통하겠다는 목표다. 음악극 '공무도하' '솟아라 도깨비' 등의 음악을 만든 류형선 전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예술감독과 연극 연출가 이병훈이 각각 작곡과 연출을 맡았다.

'현의 노래'는 김훈 작가 특유의 유려하고 밀도 높은 언어로 처참히 무너져 내리는 가야의 현실, 전쟁과 순장이라는 시대적 잔인함, 예술을 지키기 위해 조국의 멸망과 신라로 투항해야만 했던 우륵의 지난했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러나 소설을 악극으로 만드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이병훈 연출가가 '미친 짓'이라고 잘라 말할 정도로 소설 '현의 노래'의 유려하고 난해한 문장을 공연으로 완벽하게 살려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 연출가는 "소설의 유려한 문체를 그대로 살리고 글을 읽으며 상상하는 부분을 무대 위에 그려낸다는 것은 참 어렵다"며 "처음에는 뮤지컬이나 연극처럼 대사와 연기, 음악이 함께하는 공연을 생각하다 음악을 전면에 내세우는 오라토리오식 국악극을 생각해낸 이유"라고 전했다.

오라토리오는 보통 성서에 입각한 종교적 내용의 공연으로, 오페라처럼 독창, 합창, 관현악이 등장하지만 합창의 비중이 더 크고 이야기의 줄거리는 내레이터의 낭송으로 진행된다.

류형선 작곡가도 "김훈 작가의 글은 라임 하나라도 놓치면 밀도가 흐트러진다. 글을 읽다보면 감성이 파편처럼 터져나온다"며 "그의 필체를 음악으로 펼치는 작업은 정말 힘들었지만, 결과물을 보니 원작의 필체를 어딘가 닮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아마 이 작품이 쓰여지는 내내 원작의 자양분이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털어놨다.

우리 소리의 감동을 전하기 위해 원작에 있는 다양한 등장인물도 과감히 줄이고 우륵에 집중해 작품을 새롭게 구성했다. 내레이션으로 극을 이끌기 때문에 노래 실력보다는 다른 부분에 방점을 찍은 이들이 주인공으로 발탁됐다. 주인공 '우륵'에는 실제 가야금 연주자인 김형섭 국립국악원 단원이, 우륵의 제자인 '니문'에는 김태문 뮤지컬배우가, 비운의 여인 '아라'는 이하경 국악원 무용단원이 맡았다.

국립관현악과 가야금 병창을 적극 활용해 음악이 극을 주도할 수 있게 했고 조선시대 음악 위주의 국악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원초적 문화의 흔적이 남은 '가야'만의 선율을 만들어냈다.


이번 공연은 특히 아수라 같은 세상 속에서 '음악은 살아야만 존재할 수 있다'는 예술의 영원성을 삶 속에 투영하며 버텨낸 우륵의 삶에 집중했다. 김훈 작가 역시 작품을 통해 예술의 가치에 대한 의미 있는 물음을 던졌다.


이병훈 연출가는 "음악은 듣는 순간 사라져버리지만, 그것은 다시 마음을 울리는 영원성을 지닌다"며 "이 땅의 거친 역사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 숨쉬고, 누구도 소유할 수 없는 우리 소리의 깊은 울림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우륵이 전하는 희망과 화합의 메시지"라고 덧붙였다. 공연은 오는 11월 10일부터 20일까지 국립국악원 예악당.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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