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논단]

파운드 약세, 영국에 도움 안돼

안병억 대구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한 나라의 통화 가치는 그 경제의 기초체력을 반영한다. 무역적자 규모가 크고 경제성장률이 낮으면 돈의 가치가 기축통화에 비해 떨어진다. 지난 6월 말 영국인들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한 후 파운드 가치는 크게 하락했다. 파운드는 달러와 유로에 비해 지난달 말을 기준으로 각각 20%, 12% 가치가 떨어졌다. 그런데 파운드의 이런 평가절하는 영국의 고질적 무역적자 개선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역구조 때문이다.

영국은 지난 6월 말을 기준으로 무역수지 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약 7%를 차지했다. 제조업 등 상품 수출은 상당한 적자이지만 경제의 3분의 2 정도를 차지하는 서비스산업은 소폭 흑자였다. 외국인직접투자(FDI)가 영국의 적자를 메워주었다. 영국은 EU 28개국(영국 포함) FDI의 절반가량을 유치했다. 다국적 기업들은 영국 시장만이 아니라 EU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로 영국에 투자했다. 그런데 영국이 EU를 탈퇴하게 되면 이런 교두보 기능이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올 상반기 영국은 세계 5위의 FDI 유치국에서 7위로 밀려났다.

영국은 주로 항공우주와 같은 고부가가치 제조업에서 일부 경쟁력이 있다. 그런데 이런 제품은 가격에 민감한 게 아니라 구매력에 달려 있다. 세계 경제의 저성장 기조가 지속되는 가운데 고부가 제품의 구매력이 파운드가 약세라고 오를 리가 없다. 반면 가치가 떨어진 파운드화 때문에 수입물가는 크게 올랐다. 지난 9월 영국의 물가상승률은 1%를 기록, 전달에 비해 0.4%포인트 상승했다. 파운드 약세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은 이제 시작됐을 뿐이다.

브렉시트 지지자들은 하지만 국민투표 후 영국 경제가 그리 악화되지 않았다며 브렉시트 후에도 경제는 번창할 것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 그러나 경제지표는 그렇지 않다.

영국 통계청은 10월 27일 3·4분기 잠정 경제성장률이 0.5%라고 발표했다. 원래는 0.3% 정도로 예상됐다. 국민투표 직후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의 추가 금리인하와 총리의 조기 취임이 경제에 일부 도움이 됐다. 그러나 3·4분기 성장을 분석해보면 사정은 다르다. 3·4분기에 영국 제조업은 -1%를 기록해 2012년 이후 최저치였다. 특히 경기에 민감한 건설업은 -1.4%였고, 서비스업만 0.8% 증가했다. 브렉시트 협상이 본격 시작되는 내년 3월 말쯤이면 불안심리가 시장에 반영돼 영국 경제는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내년도 영국 경제성장률을 1.1%로 전망했는데 이는 브렉시트 투표 결정 전보다 1%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영란은행의 기준금리는 0.25%이고, 6년째 대규모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해 왔기에 통화정책의 여력이 거의 한계에 달했다.
영국이 최근 히스로공항 제3 활주로 건설을 승인하고 대규모 인프라 투자 확대를 발표한 것도 경기악화 대비책이다.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은 정치가 경제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확연하게 보여준다. 우리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