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변화의 기로에 선 한국 기업문화] 성과연봉제 정착하려면.. 객관적 성과 측정 기준 세워라

김가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11.01 17:22

수정 2016.11.01 17:22

(3)임금피크제와 성과연봉제.. 뿌리깊은 연공서열이 문제다
분야별 업무 특성과 상관없이 일률적 평가로 설득력 부족
강제할당식 상대평가도 문제
직무 분석.평가 기법 개발해 구성원이 납득할 지표 마련
비금전적 보상안도 고려해야
[변화의 기로에 선 한국 기업문화] 성과연봉제 정착하려면.. 객관적 성과 측정 기준 세워라

[변화의 기로에 선 한국 기업문화] 성과연봉제 정착하려면.. 객관적 성과 측정 기준 세워라

공공기관의 유연한 조직문화 구축 일환으로 추진된 성과연봉제 도입이 삐걱대고 있다.

업무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정부의 입장이 확고한 가운데 제도에 대한 근본적 불신이 제도 정착의 최대 딜레마로 꼽힌다. 우선, 성과연봉제 도입의 취지가 대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직원의 개인성과 및 업적과는 무관하게 임금수준의 결정되는 전통적인 연공서열 임금체계가 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데 적합하지 않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반면, 국내에 도입되는 성과연봉제는 순수한 취지가 탈색된 형식적 도입에 그쳐 절름발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을 낳고 있다. 가령, 주관적으로 이뤄지는 현행 성과평가 체계에서 '찍어내기'식 퇴출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연봉 총액이 정해진 공공기관 임금구조에서 한쪽의 임금이 올라가면 한쪽은 떨어지는 '제로섬게임'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1월 발표한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권고안'에 따르면 성과연봉제 적용 대상을 기존 간부급(통상 1∼2급)에서 최하위직급을 제외한 비간부직(4급 이상)까지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또 고성과자와 저성과자의 기본연봉 인상률 차이도 기존 2%에서 평균 3%로 확대하도록 했다.

■단기 성과주의 우려 확산

성과연봉제 도입은 비효율적이며 주먹구구식인 경영 현장의 체질 개선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게 대세론이다. 그러나 성과연봉제 도입이 단기 성과주의라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어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대표적으로 능력평가에 대한 공정성을 담보하는 게 핵심으로 꼽힌다. 성과연봉제는 산출된 성과를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단순 생산직 등의 분야에서 발전한 임금체계다. 바꿔 말하면 정확한 성과측정이 어려운 사무직 특성상 일괄적인 도입을 하기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성원 개개인의 성과와 공헌도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가 이뤄질 것이란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오히려 조직의 활력을 떨어뜨릴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실제 기업 인사 평가의 주체는 사용자 또는 관리자급이 대부분이다. 사실상 주관적 영역에서 성과측정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 성과나 공헌도에 상관없이 임의의 등급구간을 정하고 이에 직원들을 강제할당하는 상대평가방식을 차용하는 것도 공정한 성과평가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노광표 소장은 "각 업무의 고유한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모든 업무에 하나의 평가기준을 일방적으로 적용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와 같이 성과평가를 객관적으로 측정하기 위한 인프라가 부족해 이로 인한 수용성이 낮을 경우 구성원들의 동기부여 및 고용안정 측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존 호봉제의 근무연수와 자동승급에 따른 인건비 부담을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의 목소리도 높다. 임금 총액이 정해지는 공공기관 구조에서 필연적으로 임금이 오르는 사람이 있으면 반대로 임금이 삭감되는 방식이 적용된다. 단기 성과주의를 야기하고 내부 경쟁과 사내 정치만 가중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 객관적 성과측정 지표 개발 절실

성과연봉제의 안착을 위해서는 외국제도를 기계적으로 도입할 게 아니라 평가에 대한 피드백 구조를 보완하는 것을 비롯해 집단성과 보상프로그램이나 비금전적 보상 등 성과연봉제의 취지를 살릴 수 있는 대안들도 함께 모색해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근 강제할당식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후 오히려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이 더 커지면서 이를 폐지하는 기업들의 사례도 늘고 있다.

2002년 대우자동차를 인수한 한국GM은 사무직 직원들을 중심으로 성과연봉제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도입 10년 만인 지난 2014년 이를 폐지했다. 업무 효율성이 높아지는 효과보다 조직불화를 초래한다는 구성원의 불만이 높아진 탓이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도 비슷한 이유로 2013년 성과 연봉제를 폐지했다. 기업 경쟁력 하락 요인을 분석하기 위해 외부 컨설팅 회사에 의뢰한 결과, 상대평가 기반의 성과관리 제도가 조직 구성원들 간의 협력을 통한 창의적인 문화를 약화시켰다는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성과연봉제가 성공적으로 운용되기 위한 요건으로 직무분석과 직무평가 기법의 개발 등 공정한 평가체계를 가장 먼저 꼽고 있다. 구성원들이 평가에 대해 납득할 수 있도록 이의제기 절차나 피드백 체계가 구축되는 것도 방안으로 지목된다. 자기평가 및 면접의 기회를 제공하는 등 평가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된 다.


노 소장은 "성과급체계는 성과에 기반하고 있다는 인식 때문에 가장 효율적이고 객관적인 임금체계로 오해되는 경우가 많다"며 "미국이나 유럽에 정착한 직무급 체계나 일본의 직능급 체계를 작동하게 하는 교육훈련시스템이나 평가.자격시스템 기반이 없으면 시행이 불가능한 제도"라고 지적했다.

또 직원들의 기본연봉은 유지되는 가운데 우수성과자에게 추가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등의 보상지급 방식 개편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전주대 오재록 교수는 "집단성과 보상프로그램을 조화시키고, 비금전적 보상을 고려하는 등 기관 및 사업의 특성, 직무, 직종, 환경에 적합하게 설계하고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조창원 팀장 박지영 윤지영 한영준 홍예지 장민권 김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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