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금융일반

[데스크 칼럼] '최순실 게이트'에 금융사가 안보이는 이유

김용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11.20 17:02

수정 2016.11.22 13:24

김용민 금융부장·부국장
[데스크 칼럼] '최순실 게이트'에 금융사가 안보이는 이유

옛 은행원들이 들으면 뜨끔하겠지만 은행 문턱 넘기가 정말 어려웠던 시절에는 은행권에 온갖 불법과 편법이 버무려진 특혜금융이 넘쳐났다. 은행 직원을 알지 못하면 대출은 접근하기조차 어려웠다. 대출을 받는 데 성공해도 높은 이자는 당연한 거고 예금이나 적금통장을 개설해 대출금 중 일부를 입금해주는 이른바 '꺾기'가 일상화돼 있었다. 그래도 돈을 빌릴 수만 있다면 그저 감사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들으면 눈 껌벅거리며 실감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겠지만 26년 전 사회 생활을 시작한 제가 실제로 경험했던 일이다.

가계를 꾸리는 데 필요한 그리 많지 않은 돈을 빌리는데도 이랬는데, 장사를 하거나 기업을 운용하는 데 필요한 많은 돈을 빌리기는 얼마나 더 어려웠을지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많은 돈을 빌릴 경우 꺾기는 애교에 불과할 정도로 편법이나 불법이 판쳤나 보다.

은행에 입행한 지 오래된 선배에게 들어보니 짐짓 가관이었다. 당시 은행 지점에 별도의 운용비가 없는데 돈은 늘 풍족했단다. 대출을 해주면서 챙긴 뒷돈이 항상 두둑했기 때문이다. 지점 회식을 자주 해도 운영비는 넘쳤고, 큰 점포 지점장은 월급 외로 챙긴 돈이 상당히 많았단다. 가만히 있어도 돈이 필요한 사람이 줄을 섰던 때로, 요즘 은행원에게는 상상하기 어려운 좋았던(?) 시절로 이 선배는 기억했다. 아주 오래된 일을 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과장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예전에 돈이 부족했던 시절에는 어렵지 않게 그려볼 수 있는 풍경이다.

현대사회에서 삶과 금융은 불가분의 관계다. 특히 성인이 되면 누구나 은행에 통장을 만들어 입금하고 돈을 보내고 지출하고 세금도 낸다. 대출을 받기도 하고 신용카드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한다. 삶이 어떤 식으로든 금융에 흔적을 남기게 되어 있는 셈이다. 그러다보니 무슨 일만 생기면 금융은 단골 메뉴이자 약방의 감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나라가 벌집 쑤셔놓은 듯 요란하다. 벌집도 그냥 벌집이 아닌, 고약한 땅벌집인 모양이다. 그도 그럴 만하다. 최씨가 건드린 분야가 광범위한 데다 그 내용을 보면 쓴웃음이 나온다. 최씨의 딸 정유라 앞에서 정부의 교육체계는 무용지물이었다. 학교나 교사를 마음대로 쥐락펴락했고, 명문여대라는 이화여대 입학도 최씨의 딸에게는 식은 죽 먹기였다. 자비도 아니고 대기업 돈으로 승마용 말을 사고, 교육도 받았다. 삼성그룹 오너 아들의 중학교 부정입학 의혹만으로도 나라가 들썩였는데 정씨는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그야말로 스케일이 남다르다. 이를 보는 청소년들의 상심이 이만저만 아닐 듯싶다. 교육뿐만 아니라 정부 고위직 인사 개입, 특정 병원 지원까지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다. 재계에도 손을 뻗어 대기업 돈으로 미르재단이나 K스포츠재단을 설립했고, CJ그룹에는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영역에서 비리가 터졌지만 약방의 감초였던 금융권은 의외로 조용한 편이다. 하나은행 대출 등 일부 얘기가 나오긴 했지만 별 문제가 되지 않은 모양이다.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예전처럼 은행 돈 빌리기 어려웠고, 은행이 불법에 무감각했다면 이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분명 최씨의 손아귀에 걸려들었을 것 같다.
역설적이게도 시중에 넘치는 돈, 그로 인한 초저금리가 은행에 특혜금융이 자라날 토양을 없애는 듯해 요즘 가슴을 쓸어내린다.

yongmin@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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