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사설

[이성구의 소비자경제] 권력의 공포와 최씨의 최면술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12.01 17:13

수정 2016.12.01 17:13

[이성구의 소비자경제] 권력의 공포와 최씨의 최면술

국정농단이란 죄는 형법상 죄목이 없다. 국민감정으로는 엄청난 죄인지 모르지만 적어도 형법상으로는 죄가 되지 않는다. 대통령이 들어주지 않겠지만 누구든 대통령에게 인사에 관해 조언할 수 있고, 정부나 국회에서 외면당할 뿐이지 누구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예산을 편성해줄 것을 요구할 수 있다. 구걸행위로 경멸당할지는 몰라도 재벌들에게 사회에 공헌하라거나 재단을 만들어 공익사업을 하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최순실 자신의 욕심을 위한 것일지라도 권력이나 재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어떤 요구를 하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니다. 어떤 기업이 자신들의 일에 걸림돌이 된다거나 제작한 문화 콘텐츠가 맘에 안 들어 그 기업 경영진의 교체를 시도한 것도, 그 자체가 죄라기보다 경제수석을 시켜 압력을 넣은 대통령의 행위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죄다.
나아가 정유라가 부정입학을 했다거나 출석도 하지 않고 엉터리 보고서로 학점을 받았다 해도, 거짓서류를 제출했거나 시험 부정행위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특별히 죄가 되지 않는다.

최씨가 국정을 농단했다기보다 대통령을 포함, 수많은 사람이 국정을 농단(혹은 직권을 남용하거나 직무를 유기)해 최씨의 사익 추구에 협조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기업의 경우 농단이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지만, 지배주주가 개인적 이익을 위해 회사 돈을 최씨에게 준 것이니 횡령·배임일 수 있지만 최씨의 죄가 아니라 그런 행위를 한 임직원의 죄다.

그런데 모두 죄를 부인한다. 대통령은 선의로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을 위해 기업들에 협조를 구했을 뿐이고, 다수 협력자도 자신들은 몰랐다고 한다. '최순실 게이트'라고 하지만 사실은 대통령을 포함한 우리 권력층과 재력층의 국정농단이고, 기업의 횡령·배임 사건인데 피해자 흉내는 가당치 않다.

필자도 작금의 국정농단 사태 과정에서 이유도 모른 채 피해를 본 사람이지만 항의조차 한 적이 없다. 인격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쓸데없이 부스럼을 일으켜 더 큰 피해를 보고 싶지 않은 권력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국정농단은 최씨에게 협조해 권력이나 이권을 얻으려는 자들에 의해 일어난 것이지만 필자 같은 겁쟁이들이 있어 가능했던 것이기도 하다.


그동안 최순실에게 협력해 이득을 취한 국정농단자들은 그녀를 몰랐다고 거리를 두고, 극히 일부는 마지막까지 호위무사를 자처하며 최순실에게 모든 죄를 덮어씌워 대통령 구하기를 하는 상황이니…. 권력자들에게 최면술(?)을 걸어 국정을 농단하게 만든 최씨 일가의 죄인가. 최씨 부녀가 40년에 걸쳐 대통령과 협력해 만들어낸 권력이 침몰하는 상황을 구치소에서 지켜보면서 무엇을 떠올릴까. 다시 한번 우리 사회의 약점을 파고들어 반전의 기회를 노리는 것은 아닌지 섬뜩하다.

대통령이 물러나도 최순실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처벌하겠다던 총리가 뒤를 잇는다.
대통령 퇴진만큼이나 부당하게 권력을 행사해 협조한 자들의 행태를 밝혀내 권력 남용에 대해 책임지게 해야 한다.

yisg@fnnews.com 이성구 fn소비자경제연구소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