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석학에 듣는다]

트럼프, 유로 살려낼까

유럽은 이제 막 두 가지 어려운 시험을 치른 참이다. 오스트리아는 유럽연합(EU) 최초의 극우 대통령의 가능성을 일축한 반면 이탈리아는 정부에 매서운 회초리를 들었다. 이탈리아는 아울러 포퓰리스트가 집권할 수 있는 길도 열어뒀다.

유로가 최근 수년간 유럽의 많은 경제적 고통(더블딥 침체부터 더디고 순탄치 않은 회복에 이르기까지)의 배경이라는 비난 속에 국수주의자, 유럽회의론자, 포퓰리스트 정치세력들이 기반을 다졌다. 오스트리아는 여기서 한 발 물러섰지만 이탈리아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개헌 국민투표가 부결되면 물러나겠다는 약속을 마테오 렌치 총리가 이행하기로 결정하면서 이탈리아 정국은 혼란으로 빠져들었고, 조기 총선 가능성이 높아졌다. 포퓰리스트 오성운동은 유로존(유로 사용 19개국) 잔류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 약속을 내걸었고, 유권자들을 술렁이게 만들고 있다.

유로존이 쪼개지지 않으려면 이탈리아는-실상은 유로존 전체가- 시급히 경제를 성장시켜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아마도 그 적임자일지 모른다. 취임이 수주일이나 남았음에도 트럼프는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고 있다. 미 장기금리는 오르고 있고, 앞으로도 더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훨씬 적기는 하지만) 유럽 금리도 끌어올리고 있다. 독일 10년물 국채 수익률(금리)은 미 대선 이후 0.50%포인트(50bp) 가까이 올라 플러스를 기록하고 있다. 포퓰리스트들은 더 이상 유럽중앙은행(ECB)이 독일 예금자들로부터 세금을 거둬들인다는 불평을 할 수 없게 됐다.

또 트럼프 당선에 따른 가파른 미 달러 상승은 유럽 수출경쟁력에 도움이 될 것이다.

결국 트럼프 승리는 유로존 경제에는 긍정적인 것으로 보이고 그 혜택도 지속될 전망이다. 트럼프는 법인세율을 35%에서 15%로 낮추는 것을 포함해 대규모 감세를 약속했다. 이에 더해 인프라 투자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군비지출도 늘릴 계획이다. 미 경제가 풀가동에 가까운 상태에서(실업률이 5%에도 못미친다) 그 수요를 충족하려면 수입이 늘어야 한다. 게다가 달러는 강세다.

이 모든 상황은 유로존에는 호재다. 미국은 여전히 주요 수출시장이다. 유로 하락 효과는 독일에서보다 이탈리아에서 3배 정도 더 크다. 독일의 수출 수요는 전문화된 자본재에 집중돼 있어 가격탄력성이 극히 작다. 급격한 수요확대에 따른 미 성장은 결국 강달러와 맞물려 유로존이 꼭 필요로 하는 (회원국 간) 재균형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유럽은 또 트럼프의 에너지 정책에서도 이득을 본다. 대선기간 트럼프는 에너지 자급을 약속했다. 국내 석유, 가스, 아마도 석탄산업에 새 보조금이 지급될 수 있음을 뜻한다. 이는 유가 하락을 부르고 에너지 수입국들인 유로존에 도움이 된다.

트럼프노믹스가 유럽에 어떤 잠재적 이득을 줄지 선례가 있다. 1970년대 달러를 기반으로 한 고정환율제의 브레턴우즈 체제가 무너진 뒤 유럽은 거칠게 출렁거리는 환율의 바다에서 안정이라는 섬의 기능을 하도록 하는 유럽통화체계(EMS)를 고안해냈다. 처음에는 인플레이션, 경제정책 우선순위 등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 EMS의 역내 환율을 안정시키는 게 매우 어려웠지만 로널드 레이건이 미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상황이 급속히 개선됐다.

레이거노믹스는 대규모 재정적자와 달러 초강세를 불렀다. 저유가까지 겹쳐 유럽은 간극을 극복하고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사실 이탈리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EMS 평균을 웃돈 건 이때가 마지막이었다. 트럼프노믹스는 정확히 같은 여건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트럼프 정책들의 잠재적 단점이 무엇이 됐건 확실히 긍정적인 측면 하나는 있다.
경제적 불만이 정치적 혼란을 부르고 있는 유로존에서 성장과 고용을 끌어올릴 것이란 점이다. 또 그 이득은 이를 가장 필요로 하는 국가들에 더 많이 돌아갈 것이다. 트럼프는 유로를 살려내고도 남는다.

대니얼 그로스 유럽정책연구원장
정리=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