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차관칼럼

[차관칼럼] 공공사업 기술평가제도의 딜레마

김원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12.18 17:13

수정 2016.12.18 17:13

[차관칼럼] 공공사업 기술평가제도의 딜레마

얼마 전 공공사업의 기술평가위원에게 사업을 수주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지속적으로 선물, 골프 접대 등을 한 업체 대표가 경찰에 붙잡혔다. 또 업체로부터 금품 등을 수수한 교수, 국책기관 연구위원 등 평가위원 27명도 무더기로 적발됐다. 이번 사건은 그동안 공공사업의 객관적이고 투명한 평가를 위해 노력해온 조달청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소위 공공사업의 기술평가제도에 허점이 노출된 것이다.

이런 일은 조달청 입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한 정보화 관련 기관이 제안서 평가에 금품을 수수한 평가위원을 참여시켜 문제가 됐다.
또 군납 계약 과정에서 유리한 평가를 받기 위해 평가담당자에게 뇌물을 제공한 경우가 적발되기도 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일까.

우선 그 원인을 평가위원의 도덕불감증에서 찾을 수 있다. 일부 업체는 아직도 평가위원에게 금품과 향응을 제공하는 등 불공정한 게임을 하고 있다. 업체와 위원 간 유착을 차단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에도 다소 허점이 나타나고 있다. 평가위원을 선정할 때 일정한 자격요건만 충족하면 등록을 허용해 도덕성 검증에 소홀한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조달청은 제안서 평가의 전문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꾸준히 제도를 개선해 왔다. 특정위원이 편차를 심하게 벌려 평가결과를 좌지우지할 수 없도록 일정 편차 이상 점수를 부여할 경우 강제조정을 하도록 했다. 업체와 평가위원 간 사전접촉 시 평가점수를 대폭 감점 처리하기도 했다. 해당 위원은 명단에서 제외하고 업체는 입찰 참가자격을 제한했다. 또 사업금액 40억원 이상 대형사업의 평가는 보다 전문성 있고 공정하게 진행하기 위해 전문평가제도를 도입했다.

지속적인 제도개선에도 '입찰장 밖'에서 이뤄지는 평가위원과 업체 간 유착 문제 해결이 조달청의 고민이자 딜레마이다. 제도개선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평가위원과 업체의 '윤리의식'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본다. 마침 지난 9월부터 청탁금지를 위한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평가위원과 업체 간 유착 문제도 변화가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조달청은 앞으로 업체와 위원 간 유착을 사전 예방하는 데 비중을 두려고 한다. 유착행위가 발생한 후에는 강하게 조치하더라도 사후약방문에 그칠 수밖에 없다. 평가위원을 등록하는 단계에서부터 범죄경력, 소속기관 징계 이력, 소속기관장의 추천 등을 제출받아 대상자의 자격요건은 물론 청렴성을 철저하게 검증할 계획이다.

또 평가위원 교섭 시기를 평가 2일 전에서 하루 전으로 변경해 평가위원과 업체가 사전 접촉할 수 있는 시간을 차단하려 한다. 평가위원의 실명과 점수를 공개해 공정성과 신뢰도가 높은 전문평가의 대상사업도 확대할 계획이다.


결국 공공사업의 기술평가제도 정착을 위한 제도개선과 평가위원의 문제는 서로 맞물리는 톱니바퀴와 같다. 어느 한 가지 문제가 해결됐다 해도 또 다른 문제가 남아 있는 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앞으로 공공사업의 기술평가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뤄져 오로지 기술개발에 올인하는 업체만 살아남을 수 있는 건강한 입찰문화가 정착하기를 기대해 본다.

정양호 조달청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