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주영 칼럼]

졸혼(卒婚) 사회

편의성만 추구하는 삶 속에 결혼의 참뜻 뒷전으로 밀려나
해체되는 가정의 단면 드러내

인생에서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는 생각이 신세대들 사이에 통용된 지는 벌써 오래 됐다. 요즘에는 기성세대들도 신세대의 결혼관을 따라 가는 듯하다. 50대 이후에 이혼이 급증하는 걸 보면 그렇다. 지난해 결혼 5년 미만인 신혼부부보다 20년 이상인 중년부부 이혼이 더 많았다. 평균적으로 신혼부부 세 쌍이 헤어질 때 중년부부는 네 쌍이 헤어졌다. 결혼이 필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중년층에서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우리 시대의 중년들은 부부가 백년해로 하는 것에 더 이상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부부 사이가 원만하지 못하면 결혼이라는 틀에 얽매여 살기보다는 이혼해서 자유를 찾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결혼의 틀을 유지하는 경우라도 그 결합의 강도가 현저하게 느슨한 변종이 나타나고 있다. 졸혼(卒婚)이 대표적인 예다. 결혼에도 졸업이 있다는 뜻이다. 모 방송사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졸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이들이 졸혼을 희망하는 이유는 '결혼생활 중 못한 경험을 하고 싶어서' '배우자의 간섭 없는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어서' '사랑 없는 결혼생활에 싫증을 느껴서' 등이다.

혼인상태를 나타내는 말에는 결혼과 이혼, 미혼과 비혼, 별거와 동거 등이 있다. 졸혼은 이 가운데 결혼과 별거의 중간지대에 해당한다. 부부가 혼인 관계를 유지하되 실생활은 서로 간섭하지 않고 각자 자유로운 삶을 사는 생활방식이다. 일본 작가 스기야마 유미코가 저서 '졸혼을 권함(卒婚のススメ)'에서 처음 사용한 말이다. 별거와 유사하지만 별거가 나쁜 감정으로 헤어지는 것인 데 비해 졸혼은 좋은 감정을 유지한다는 점이 다르다.

졸혼자들은 결혼을 시작과 끝이 있는 과정으로 인식한다. 아이를 낳아 기르고 교육하는 기간에는 서로 협력해 결혼생활을 유지하지만, 그 기간이 끝나면 독자적인 삶을 되찾으려는 욕구가 강하다. 이들은 결혼이 자유로운 삶을 방해하는 구속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결혼에서 해방된다는 뜻으로 '해혼(解婚)'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졸혼의 형태는 다양하다. 남편은 은퇴 후 귀농.귀촌을 하고 아내는 도시에 남는 각자도생형, 아내가 손자 양육 등을 핑계로 자식 집으로 이주하는 이산가족형, 한집에 살면서 각방을 쓰고 생활도 독립적으로 하는 한 지붕 두 가족형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졸혼 부부가 적지 않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런 세태가 함축하고 있는 사회경제적 의미가 클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에 대한 통계나 연구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결혼은 수명이 다할 때까지 쓰다가 버리는 생활용품이 아니다. 성인 남녀가 믿음과 사랑으로 만나 가정을 이루는 성스러운 결합이다. 또한 사회를 떠받치는 가장 기본적인 토대이기도 하다. 편의성만 추구하는 삶 속에 결혼의 참뜻이 점점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온 가족이 한자리에 둘러앉아 함께 식사하는 전통적인 식구 개념이 실생활에서 거의 사라져간다. 졸혼은 해체 위기에 직면한 현대 가정의 또 하나의 단면이다.


최근 발표된 통계청의 '2016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절반은 결혼이 필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혼 없이 동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거의 절반이나 된다. 결혼이 무너지고 있다. 갈수록 복잡해지는 현대인의 삶 속에서 허물어져가는 가정의 의미를 되새겨봐야 하지 않을까.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