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조광희 변호사, "수직계열화 폐해 심각, 겸영금지·점유율 제한 검토해야"

조광희 법무법인 원 변호사

2016년은 한국영화계에 특별한 의미를 남겼다. 한국 개봉극장이 4년 연속 관객 수 2억명을 돌파했는데 워너브라더스와 20세기폭스 같은 할리우드 스튜디오가 일익을 담당한 것이다. 워너와 폭스가 각각 투자·배급한 ‘밀정’과 ‘곡성’이 그 주역이다. 이들 스튜디오가 한국영화에 지속적인 투자를 예고한 가운데 CJ와 롯데, 쇼박스, NEW가 주름잡던 한국영화 생태계는 변화에 직면하게 됐다.

■워너·폭스 직접투자... 시장발전에 기여할 것
지난 9일 서울 강남대로 법무법인 원 사무실에서 조광희 변호사(49·법무법인 원)를 만났다. 조 변호사는 영화진흥법 제정에 힘을 보태고 영화등급보류제 위헌판결을 이끌어내는 등 90년대 중반부터 한국영화 진흥에 기여해온 법률전문가다. 그런 그가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한국영화계 직접투자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지 궁금했다.

조 변호사는 “제작자 입장에선 선택의 폭이 늘어나는 것이고 투자자 입장에서는 과점상태에서 경쟁적인 상황이 조성되는 것”이라며 “시장의 발전을 위해 환영할 만하다”라고 간명하게 평가했다. 일부 투자·배급사가 과점상태를 이룬 한국영화계에 할리우드 투자사의 진입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으리란 진단이다.

실제 조 변호사는 이들 할리우드 스튜디오가 한국 영화시장에 순조롭게 연착륙할 수 있도록 법률 자문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조 변호사는 “할리우드 영화사라 해도 로컬시장의 수요를 거스르면서 경쟁할 수 없다보니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전문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며 “할리우드는 계약서의 분량이나 형태, 내용이 모두 전문화·구체화돼 있는데 이게 한국시장에서 부담스럽게 받아들여질 수가 있어 양쪽이 다 수용할 수 있는 안을 만들어내는 게 주요한 업무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했다.

조 변호사는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국내진출이 도리어 한국영화가 세계시장으로 나갈 수 있는 전기가 될 수 있으리란 전망도 내비쳤다. 조 변호사는 “할리우드 스튜디오는 전 세계에 배급망을 가지고 있어 완성도에 따라 한국영화가 세계로 나가는 전기가 마련될 수 있다”며 “K팝이나 다른 한류처럼 전 세계가 수용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완성도 높은 이야기가 만들어지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기대를 표했다.

실제 폭스 인터내셔널 프로덕션(FIP)이 투자해 만든 인도영화 ‘내 이름은 칸’은 폭스의 배급망을 타고 전 세계로 배급돼 4000만달러가 넘는 수익을 거뒀다. FIP는 ‘황해’부터 ‘곡성’까지 한국영화 5편에 투자한 상태로 차후 콘텐츠의 성격과 질에 따라 한국판 ‘내 이름은 칸’과 같은 전 세계 흥행작이 나올 가능성도 충분하다.

■수직계열화 폐해 심각... 겸영금지·점유율 제한 필요
조 변호사는 이들 스튜디오의 한국시장 진출이 투자부터 제작, 배급, 상영 등의 과정을 문어발 계열사를 통해 장악하는 수직계열화와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조 변호사는 “(할리우드 스튜디오가) 제작과정에 관여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직접 제작이나 배급을 할 필요를 느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이들이 극장을 소유하는 등의 사례는 보고된 바 없고 정서적으로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 변호사는 “수직계열화는 자기들 입장에선 최선을 찾아가는 거긴 하지만 시장 전체로 볼 땐 독과점의 폐해가 있다”며 “민주당 도종환 의원과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이 투자배급사의 극장소유를 제한하는 법안을 발의한 상태로 현재로선 한 기업이 투자·배급사와 극장을 같이 갖고 있어도 제재할 방법이 없다”고 우려했다.

앞서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014년 CJ CGV가 ‘광해, 왕이 된 남자’에, 롯데시네마가 ‘해적: 바다로 간 산적’에 상영관 밀어주기를 한 사실을 적발하고 각각 과징금 32억원과 23억원을 부과했다. 하지만 영화계에선 이들 대기업 멀티플렉스의 상영관배정이 여전히 기업의 이해관계에 따라 배정된다는 의혹의 목소리가 높다. 10월 개봉한 다큐멘터리 ‘자백’의 상영관이 예매율에 비해 적게 배정된 게 대표적이다.

이와 관련해 조 변호사는 “공정위가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해 조사하고 규제해야 하지만 현재 매우 미흡한 수준”이라며 “근본적으로 대기업이 수직계열화를 할 수 없도록 법으로 겸영을 금지하고 특정영화의 스크린 점유율 제한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 변호사는 “책을 예로 들면 서점 진열대에 특정한 책만 깔려 있는 꼴”이라며 “그 주 개봉영화 중에 자기들과 가까운 영화만 극장에 거는 건 불공정하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조 변호사는 이어 “극장 입장에선 이 영화가 잘 될 것 같으니 우리가 모두 도배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상영관이 제한돼 있으니) 작은 영화가 불리할 수밖에 없다”면서 “상영관을 다각화해 장기상영을 해도 되는 것인데 잘 되는 영화 한둘이 상영관을 독점하는 일이 지속되면 전체 생태계가 좋아지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전문성 있는 인사로 영진위 정상화 이뤄야
조 변호사는 영화진흥위원회의 유명무실한 활동에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조 변호사는 “한국영화계 전체가 나아갈 방향을 정하고 지원해야할 곳을 지원하는 기능이 중요한데 (그 역할을 해야 할) 영진위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어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요즘 진행되는 대통령 탄핵과 무관하지 않은데 (정권과) 가까운 사람들을 (요직에) 죄다 몰아넣으니 될 일도 진행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조 변호사는 “영화계에 전문성이 있는 분이 영진위를 이끌어야 하는데 아예 처음 보는 사람이 (영진위원장 등 요직에) 임명됐다”며 “이명박 정부 때부터 이런 문제가 거듭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최근 영진위는 박환문 사무국장이 성희롱과 부적절한 자금집행 등 각종 비위 혐의로 문화체육관광부 감사에서 중징계요구 처분을 받아 체면을 구겼다. 박근혜 대통령 대선캠프인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추진위원 출신인 박 사무국장은 영화계와 무관한 인사로 임명 당시부터 논란이 된 바 있다.

■한국영화 숙제는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
한 시간 가까이 진행된 이날 인터뷰에서 조 변호사는 한국영화의 발전을 위해 공정한 법률질서 확립과 상대적 약자에 대한 지원, 표현의 자유 보장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반복해 강조했다.
문화 뿐 아니라 사회 전 영역에서 마땅히 보장돼야 할 것으로 여겨지는 이들 가치가 한국에선 여전히 위태롭다는 뜻이다.

한국 영화계의 남은 숙제가 무엇이라고 보느냐는 마지막 질문에 “부산영화제 ‘다이빙벨’ 사례에서 보듯 정치적으로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는 문제도 있고 현장에서 일하는 스태프들의 노동조건을 선진적으로 정비해야 하는 문제, 예술영화 지원과 상업영화 진흥을 위한 정책적인 부분, 대기업의 겸영문제 해소 같은 문제가 모두 나아져야 한다”는 포괄적인 답이 돌아온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지난 20여년 동안 변호사와 영화제작자, 대학교수를 거쳐 지난 대선에선 안철수 후보 비서실장을 지내는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아온 조 변호사의 앞에 또 어떤 길이 펼쳐질지 자못 기대된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