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주영 칼럼]

불신 비용을 낮추자

세월호 잠수함 충돌 의혹 또 나와
그만큼 불신의 벽이 두텁기 때문.. 진실보다 강한 무기는 없어

며칠 전 어느 종편에서 세월호 침몰 원인과 관련해 잠수함과의 충돌 의혹을 제기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잠수함이 자기보다 몇 배나 큰 세월호와 충돌했다면, 그래서 그 충격으로 세월호가 침몰했다면 필시 잠수함도 박살이 났을 것이다. 부서진 잠수함 얘기는 왜 안 나오는가. 정부가 진실을 감추고 있는 건가. 감춰야 할 실익은 무엇인가. 의문이 꼬리를 문다. 그런데 도저히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의혹 제기가 의외로 많은 사람에게 먹혀들고 있다. 그 점이 놀랍다.

헌법재판소는 최근 박근혜 대통령에게 '세월호 7시간' 동안의 행적을 시간대별로 밝히라고 요구했다. 국민 수백명의 생명이 경각에 달려 있는 그 시간에 대통령이 그들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지를 의심하는 사람이 많다. 박 대통령이 1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그 부분을 해명했지만 의심은 가시지 않고 있다.

대통령이 위급 상황에서 최선의 대응을 하지 못했다 해도 나는 그것만으로는 대통령을 그 자리에서 쫓아내야 할 만큼 중대한 흠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능보다 더 큰 흠결은 처음부터 진실을 말하지 않은 것이다. 불신은 한번 발동이 걸리면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간다. 의혹이 의혹을 낳고, 불신의 벽이 점점 높아져 결국은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이 됐다. 급기야 국회가 탄핵소추의 사유로 걸었고, 헌재가 진실 규명에 나섰다. 이제 세월호 7시간은 대통령의 탄핵과 직결되는 폭발성 현안으로 부풀어 올랐다. 박 대통령이 자초한 일이다. 자신에게 제기된 불신을 제때 해소하지 못하고 차곡차곡 쌓아둔 결과다.

나는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불신의 벽이 두렵다. 숱한 의혹과 그로 인해 생기는 혼란이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신뢰는 소중한 자산이며, 불신은 효율성을 저해하는 비용이다. 시장에 대한 신뢰가 쌓이면 거래비용이 줄어 저비용.고효율 시스템을 실현할 수 있다. 반대로 신뢰가 무너지면 거래비용이 늘어나 고비용.저효율의 시스템이 굳어진다. 차를 안전하게 몰고 다닐 수 있는 것은 건너편 차선의 수많은 차들이 중앙선을 넘어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교통 시스템이 작동할 수 없는 것처럼 시장경제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신뢰가 없는 시스템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나 박 대통령의 탄핵도 결국은 신뢰 부재에서 비롯된 문제다. 국회와 대통령, 국민과 사법부, 여당과 야당, 근로자와 경영인, 기업인과 정부 사이에 두터운 신뢰가 있다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혼란과 갈등은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 나는 우리 경제가 소득 3만달러 문턱을 넘지 못하고 뒷걸음질하는 근본 원인으로 두 가지를 꼽는다. 하나가 불신이고 다른 하나는 부패다. 불신과 부패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한국이 선진국 되기는 어렵다.

위기에 처했을 때 진실만큼 강력한 무기는 없다. 불신의 비용이란 상대방에 대한 불신 때문에 서로 협력하지 못함으로 해서 생기는 비용이다. 한국은 지금 그런 비용을 너무 많이 지불하고 있다.
믿어라, 그 전에 믿게 하라. 진실을 말하라. 다가오는 대선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과도한 불신과 거기서 비롯되는 비용을 털어내는 계기가 돼야 한다. 누가 신뢰를 훼손하는지 온 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정유년 올 한 해가 신뢰사회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원한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