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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그래도 신약개발은 한국경제의 미래다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1.06 18:11

수정 2017.01.06 18:11

[여의도에서]그래도 신약개발은 한국경제의 미래다


통상 달력에서 윤년일 때 4년마다 2월은 29일까지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통장에 29만원밖에 없다"는 말을 했다. 보성과 광주광역시를 연결하는 국도는 29번이다. 얼마 전 한미약품은 29분 늦게 공시를 했다. '29'의 저주일까. 29분 지각공시로 인해 한미약품은 천당과 지옥을 경험하고 있다. 해외 기술수출로 한때 80만원대로 올라섰던 주가가 올해 '29'만원 안팎으로 곤두박질친 것. 투자자의 신뢰도 많이 잃었다.
당초 투자자들은 해외 제약사와의 계약조건이 파괴될 수 있다는 점을 알지 못했다. 이런 돌발변수를 사전에 경고한 증권사도 없었다. 임상시험이 불발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모두가 간과한 셈이다. 임성기 회장도 한미약품의 신뢰훼손 원인에 대해 '29분의 늑장공시'와 함께 '8조원 라이선스 마일스톤에 대한 명확한 의미전달 실패'를 꼽았다.

여기서 제약업체의 신약개발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신약개발은 녹록지 않다. 신약 하나 개발하기 위해서는 평균 10~15년의 시간이 걸린다. 비용도 8000억~1조원가량 투입된다. 국내 제약사 중 매출이 1조원을 갓 넘긴 곳은 3곳에 불과하다. 신약 하나에 연간 매출을 몽땅 쏟아부어도 부족한 실정이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세계적 신약 하나를 탄생시키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동안 한국 제약업체가 개발한 신약은 27개에 불과하다. 이는 오리지널약의 특허가 끝난 후 같은 성분으로 만든 제네릭 제품으로 국내외에 판매해온 관행도 작용했다. 사실 글로벌 제약사도 신약 후보물질에서 신약을 개발하는 것은 0.02% 확률에 불과하다.

물론 우리나라 신약은 세계시장에서 블록버스터 신약으로 성공한 사례가 없다. 연매출 500억원가량 되는 것도 보령제약의 고혈압 치료제 '카나브'와 LG생명과학의 당뇨병 치료제 '제미글로'뿐이다. 생명을 살리는 신약개발 과정이 생명을 탄생시키는 과정만큼이나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신약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안전성과 유효성 평가를 통과해야 한다. 동물을 대상으로 한 약효실험을 하는 전임상시험을 거친 후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 1상에서는 소수의 건강한 환자를 대상으로 안전성을 평가한다. 2상에서는 해당 질환을 앓는 수백명의 환자에게 최적의 투여량을 설정한다. 3상에서는 수천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유효성과 안전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다. 이후에도 각 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는 일이 남아있다. 중간에 실패하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실제 국내 모 제약업체는 지난 2012년부터 4년간 진행한 해외 3상 임상시험을 중단했다. 또 다른 제약회사도 국내 임상 1상에서는 문제가 없었지만 글로벌 임상 2상에서 부작용이 발견돼 개발을 포기했다. 그래도 도전은 지속돼야 한다. 비록 한미약품이 투자자에게 비난의 화살을 받고 있지만 한미약품의 신약개발 도전은 박수를 받기에 충분하다.
이는 제약산업이 우리나라 신성장동력으로 나아갈 도약판이 될 수 있어서다. 지난해 한미약품으로 부쩍 달아올랐던 신약개발에 대한 폭발적 관심이 이런저런 악재로 인해 고작 1년여 만에 차갑게 식는 일은 없어야 한다.
신약개발은 한국 경제의 미래이자 희망이기 때문이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산업2부 차장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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