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미국 워싱턴 근방의 피자가게 '코멧 핑퐁'에서 난데없이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졌다. 원인은 미국 대선 과정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피자가게 뒷방에서 아동 성매매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는
가짜뉴스였다. 경찰에 붙잡힌 용의자는 뉴스를 접한 후 '피자 게이트'를 직접 조사하기 위해 나섰다고 토로했다. 가짜뉴스에 속은 사람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같은 달 25일 키와자 아시프 파키스탄 국방장관은 트위터에 "이스라엘은 파키스탄이 핵보유국이란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다소 도발적인 글을 남겼다.
가짜뉴스는 허위 정보를 진짜인 것처럼 정리한 기사를 뜻한다. 숙주 사이트를 기반으로 생산, SNS를 통해 확산되며 의도적으로 가짜뉴스를 만들고 퍼뜨리는 '집단'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나단 올브라이트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엘론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최근 우익 웹사이트가 어떻게 메시지를 퍼뜨리는지를 연구한 논문 발표에서 "사실이 아닌 내용을 사실처럼 퍼뜨리는 허위 뉴스사이트 306개를 찾아냈다"며 "페이스북은 가짜뉴스의 확성기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 교황이 트럼프를 지지한다?…황당 뉴스의 파급력
전 세계가 '가짜뉴스 비상'에 걸렸다. 미국에서는 가짜뉴스로 대선 판도가 바뀌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미국에는 피자 게이트를 비롯해 '위키리크스, 클린턴이 이슬람 국가(IS)에 무기 판매한 사실 확인', '프란치스코 교황, 도널드 트럼프 지지', '클린턴, 클리블랜드 유세 대가로 가수들에게 6200만 달러 줬다', '클린턴이 올해 9월 11일 숨졌으며 CG와 대역 배우 여러 명이 클린턴 대신 선거운동을 한다' 등 사실과 관계없는 기사가 무수히 쏟아졌다. 대부분 힐러리에게 불리한 내용으로, 유명 가짜 뉴스 제작자인 폴 호너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만든 사이트에는 늘 트럼프 지지자들이 찾아왔다"며 트럼프는 자신 덕분에 백악관에 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온라인 매체 버즈피드에 따르면 지난 8월부터 대선일인 11월 8일 사이 가장 많이 언급된 진짜뉴스 20건이 페이스북에서 이뤄진 공유·의견 표명·댓글 달기는 736만7000회였다. 같은 기준의 가짜뉴스는 그보다 130만회 이상 많은 870만1000회였다. 다소 설득력 없어 보이는 가짜뉴스는 실제 뉴스보다 더욱 파급력이 셌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이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뉴스는 페이스북에서 96만 건 이상 공유됐으며 힐러리가 IS에 무기를 팔았다는 보도도 70만 건 이상 공유되며 당시 여론의 흐름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오는 9월 총선을 앞둔 독일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가짜뉴스로 4선에 실패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인공수정을 통해 태어난 아돌프 히틀러의 딸이다', '베를린에 사는 러시아 국적의 미성년자가 등굣길에 납치돼 무슬림 난민에게 강간당했다'는 가짜뉴스로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전례 없는 가짜뉴스 확산에 독일 정부는 가짜뉴스와의 전면전을 선포했다. 독일 정보기관인 헌법수호청(BfV)은 러시아가 막대한 자금을 들여 거짓 정보로 독일을 흔들려 한다고 공식 발표하며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가짜뉴스 확산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짜뉴스 대응 기관을 설립하고 사이버 공격에는 역공으로 대처하겠다는 방침이다.
최근 개헌안 통과 무산으로 마테오 렌치 총리가 사퇴한 이탈리아 역시 개헌안 국민투표에 가짜뉴스의 영향이 있었다는 분석이다. 이탈리아 팩트체크 전문사이트인 파젤라 폴리티카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12월 4일 개헌안 국민투표를 앞두고 이탈리아 SNS에서 공유된 관련 뉴스 중 절반이 가짜였다. 찬성에 투표하면 학교·병원의 민영화로 이어진다는 가짜뉴스가 있었고 국민투표 전 '찬성'을 찍은 가짜 투표용지가 무더기로 발견됐다는 가짜뉴스는 조회 수 23만 건을 기록했다.
■ 진짜보다 진짜 같은 가짜뉴스, 대책 마련 '분주'
조기 대선이 예고된 한국에서도 가짜뉴스 주의보가 발령됐다. 해프닝도 있었다. 안희정 충남지사가 한 라디오 방송에서 '안토니오 구테헤스 현 유엔 사무총장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대통령 선거 도전은 유엔 협약 위반이라고 지적했다'고 가짜뉴스를 인용해 반 전 총장의 대선 출마를 비판한 것이다. 안 지사 측은 사실에 기초한 발언이 아니었다고 하루도 안 돼 발언을 정정했지만 이미 관련 기사는 수 개 보도된 뒤였다.
해당 가짜뉴스는 유럽 한인사회를 대상으로 하는 인터넷신문에서 최초로 보도한 기사로 SNS 상에서도 일파만파 퍼졌다. 현재도 포털에서 '반기문 대선 출마 유엔법 위반' 키워드를 입력하면 관련 보도와 게시글이 줄줄이 나온다. 실제로는 구테헤스 총장이 반 전 총장의 대선 출마를 반대한다는 내용은 확인된 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기사에서 언급된 제1차 유엔총회 결의안은 법적인 구속력이 없고 '퇴임 직후'란 표현 역시 정확한 시점이 언제인지 불분명해 반 전 총장의 대선 출마를 제한하기는 어렵다.
반 전 총장 관련 가짜뉴스 외에도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는 '(속보) 헌법재판소,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 기각', '영국과 일본의 저명한 정치학자들, 비정상적인 탄핵운동 지적' 등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과 촛불집회 가짜뉴스가 빠른 속도로 퍼졌다. 유명 정치학자들이 촛불 집회를 비판했다는 가짜뉴스에 언급된 영국 정치학자 아르토리아 펜드래건과 일본 정치학자 히키가야 하치만은 가공의 인물이며 해외에서 이 같은 주장이 제기된 적도 없다.
가짜뉴스 확산 논란이 거세지자 IT 업계에서는 페이스북과 구글이 대책 마련에 나섰다. 페이스북은 가짜뉴스 신고 절차를 간소화하고 가짜뉴스로 판명된 게시글은 이용자가 직접 표시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CNN 앵커 출신 캠벨 브라운은 뉴스 파트너십 책임자로 영입했다. 구글은 광고 플랫폼 애드센스에서 가짜뉴스 생산 사이트를 차단할 계획이다. 기사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팩트 체크' 표시를 남기는 방안도 소개했다. 페이스북과 구글 모두 가짜뉴스를 걸러낼 알고리즘 개발에도 착수했다.
전문가들은 뉴스의 형식을 그대로 따르는 가짜뉴스는 언론에 대한 신뢰는 물론 사회 전반의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더불어 가짜뉴스가 생각이 서로 다른 집단을 극단주의로 몰아가 집단 간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황용석 건국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팩트체크 시스템을 통해 가짜뉴스의 확산을 막는 준거집단(신념·태도·가치 및 행동방향을 결정하는 데 기준이 되는 사회집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joa@fnnews.com 조현아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